“나의 투자 철학은 부분적으로는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얻어지기도 했고, 다른 투자자들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관찰함으로써 터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부터 배워가는 매우 고통스런 방법을 통해 얻어졌다.” 현대 주식 투자 이론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며, 당대 최고의 투자 전략가로 손꼽히는 저자가 자신의 투자 철학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회고하는 대목은 너무나도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성장주 투자의 개척자가 제시하는 “진정으로 보수적인 투자란 무엇인가?”
이 책은 필립 피셔의 3부작 가운데 뒤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 함께 묶은 것이다.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는 앞서 1958년에 초판이 출간돼 월 스트리트의 투자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이후 17년 만인 1975년에 나왔다.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가 피셔의 투자 이론을 차근차근 풀어나간 일종의 투자학 원론(原論)이라면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는 저자의 투자 철학과 투자 이론의 정수를 짚어낸 투자 전략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보수적인 투자자는 왜 성장주에 투자해야 하는지, 또 리스크가 가장 작은 진정으로 보수적인 투자 대상 기업은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지 직접 경험한 사례를 통해 명쾌하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투자의 세 가지 영역으로 기업의 펀더멘털을 하나씩 설명한 처음 3개 장은 경영 지침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한 기업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가를 움직이는 법칙…기업의 펀더멘털과 증권가의 평가
저자는 보수적인 투자의 두 번째 영역으로 인적 요소를 설명하면서 기업의 탁월한 경쟁력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며, 최고 경영진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주가의 결정적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증권가의 세 가지 평가를 지적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어떤 개별 종목의 주가가 전체 주식시장의 움직임과 비교해 현저할 정도로 변동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주식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가가 아닌 기업을 보고 투자하라고 역설한 필립 피셔가 이 책에서 주가의 변동 원인에 대해 내린 결론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다. 어떤 종목의 주가가 변동하는 이유는 그 기업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 그 기업이 속해 있는 업종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 그리고 주식시장 전체에 대한 증권가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증권가의 평가가 기업의 진정한 가치인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바로 이런 기업의 주식이 가장 보수적인(리스크가 작은) 투자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평생 고집스럽게 자신의 투자 원칙을 지켜온 老투자가의 회고록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에 이어 1980년 출간된 《나의 투자 철학》은 피셔의 회고록이다. 집필 당시 이미 일흔 고개를 넘어선 노련한 투자 전략가이자 탁월한 투자 이론가인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솔직하게 써내려 간 고백론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에는 60년이 넘는 현장 투자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 스스로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며, 그 실수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었는가를 자세하게 설명한 ‘주옥 같은’ 사례들이 담겨있다. 또 어떤 주식을 매수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한 3년간은 보유한다는 “3년 원칙”을 어긴 적은 단 한 차례, 그것도 3년간의 수익률이 좋지 않아 팔아야 했지만 성장 잠재력이 너무나 명백해 보유한 경우였다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완벽함과 함께 고집스러움마저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필립 피셔는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1년 투자자문회사 피셔 앤드 컴퍼니를 설립해 평생 투자자문가로 활동했고, 1960년대에는 스탠퍼드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투자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1958년 출간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주식 투자 서적으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영원한 투자의 고전”이며, 지금도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서”로 꼽히고 있다. 피셔는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를 때 최고 경영자의 탁월한 능력과 미래에 대한 계획, 연구개발 역량 등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피셔는 기업의 질(quality)을 무엇보다 중시했고, 그런 점에서 기업의 장부가치와 계량적 분석을 강조한 벤저민 그레이엄과 구별된다. 그는 과거의 주가 움직임을 근거로 매매 타이밍을 포착하는 기술적 분석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1930년대부터 투자 대상 기업과 고객, 경쟁업체 등을 찾아 다니며 사실 수집을 통해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직접 발굴했다. 이렇게 해서 1950년대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모토로라 같은 위대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주목받지 않지만 탁월한 기업의 주식을 발굴해 초장기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실제로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주식은 1980년대 말에 매각했고, 모토로라는 2000년 이후까지도 보유했다.
굿모닝북스는 2005년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와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를 출간해 필립 피셔의 성장주 투자론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으며, 이번에 출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을 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