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로만 알려진 체 게바라, ‘한 인간’으로 새롭게 읽다
많은 사람이 체 게바라를 ‘혁명가’ 혹은 ‘영웅’으로만 기억한다. 그의 얼굴은 티셔츠, 포스터, 영화 속 이미지로 소비되어 왔고, 때로는 낭만적 아이콘으로 부풀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체 게바라’라는 이름 안에는 그 이상의 것이 숨어 있다. 쿠바 혁명의 한가운데서 총을 들었던 인물인 동시에, 의학 지식으로 환자를 돌보던 의사였으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누비며 빈곤과 부조리에 맞섰던 행동주의자였다.
전기 총서 《인물 도서관》의 제1권 『체 게바라』는 그를 혁명의 아이콘에 가두지 않고, 입체적이며 인간적인 서사로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이다.
십진분류법으로 확장되는 ‘한 사람의 도서관’
“노인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도서관 하나가 통째로 불타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생은 그 안에 수십, 수백 갈래의 이야기가 겹겹이 자리한다. 특히 체 게바라처럼 굴곡 많은 삶을 살아낸 인물이라면, 그 깊이와 폭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십진분류법을 토대로 철학·종교·사회과학·기술·언어·예술 등 다방면에서 체 게바라를 탐구한다. 이 독특한 접근 덕분에 체 게바라의 대표 업적뿐 아니라, 심리적·문화적 배경, 시대가 던진 도전, 그에게 영향을 준 혹은 그가 남긴 기록등을 놓치지 않고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한 권 안에 다양한 분야를 수용하면서도, 무미건조한 정보의 나열을 피하기 위해 저자의 해석과 스토리텔링을 곳곳에 녹여 냈다. 독자들은 마치 도서관 서가를 이리저리 거닐듯, 체 게바라라는 거대한 인물도서관를 자유롭게 탐색하게 된다.
혁명의 이상과 폭력의 그림자, 그 사이에서
쿠바를 혁명의 성공으로 이끈 체 게바라의 모습은 언젠가부터 로맨틱한 상징으로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그의 삶은 순도 100%의 영웅 서사라기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는 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의학도로 시작된 그의 여정은 각국의 혁명 전선에서 수많은 굴곡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폭력과 갈등도 분명 존재했다.
『인물 도서관: 체게바라』는 이러한 모순과 빛나는 지점들을 결코 ‘미화’ 또는 ‘악마화’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에 근거해 전달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혁명가 체 게바라가 현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의 이상을 펼쳐 보였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 보다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인물 도서관’ 시리즈, 작은 책 한 권에 담긴 거대한 입체성
이 책은 한 권에 200페이지 안팎의 문고본 형태로, 독자들이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도록 기획했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형태에서만 그칠 뿐, 내용은 결코 얇지 않다. 인물을 다층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며, 논문식 학술문이 아닌 흥미로운 이야기체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은, 한 사람을 다면적으로 재현하겠다는 편집 방침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방대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체 게바라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쿠바 혁명이 지닌 의미, 라틴아메리카 문화가 혁명 정신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러한 정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까지 폭넓게 사유할 수 있다.
교사이자 집필자로서 40년 경험이 빚어낸 깊이와 생동감
『편지로 보는 은밀한 세계사』, 『영화보다, 세계사』 등을 통해 이미 독자들과 소통해 온 저자 송영심은 40년간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쳐 온 베테랑 교사이자, 여러 차례 세계사 교과서를 직접 집필해 본 경험이 있다. 그만큼 “교과서식 딱딱한 지식을 어떻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낼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본 시리즈에서도, 저자는 독자가 주인공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화법을 택했다. 특히 체 게바라가 겪은 사건과 심경 변화를, 가능하면 직접 남긴 문장이나 주변 인물들의 증언 등을 근거로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독자들은 체 게바라의 순간들을 따라가며, 그가 당대에 맞닥뜨린 사회·정치적 환경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오늘의 독자들에게 체 게바라는 무엇을 말해 줄까
“마르크스주의일 수도, 혹은 사회정의일 수도, 그 무엇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체 게바라가 목격했던 불합리함과 이상 사이의 간극은
오늘날 우리 역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지점이다.”
체 게바라의 행보가 늘 옳았던 것은 아니며, 그 목표가 모두 달성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왜 여전히 체 게바라가 전 세계에서 회자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그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문제 의식(빈곤, 불평등, 불의에 대한 저항 등)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상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실과 부딪히고, 그 충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잃는가"라는 보편적 화두를 던진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복기하는 수준에 더해 ‘나의 오늘’에 체 게바라를 대입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가 보여 준 도전정신과 모순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쉽게 펼칠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입체적 ‘인물 독서’의 새 지평
『인물 도서관: 체게바라』는 혁명가의 삶을 더 풍부하게 읽고 싶은 사람, 이론서나 교과서적 서술에 지친 독자, 또는 체 게바라를 이름만 알았던 이들에게도 모두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 준다. 한 인간을 관통하는 다양한 맥락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이 작은 도서관에서 만끽해 보길 바란다.
“내 안의 혁명가를 깨울,
혹은 내 안의 회의론자를 달래 줄
이 불온하고 아름다운 지적 여행이
바로 지금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