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지 노트에 손으로 그린 생각 노트
저자는 왜 굳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데이터가 저장되지도 않고, 색은 비교도 안 되게 적고, 잉크는 닳고, 그림을 그릴 공간은 한정적이며, 한 번 그리고 칠하면 지우고 다시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 것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그릴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다. 패드나 모니터, 전자 펜슬, 충전기나 콘센트, 책상과 의자는 필요 없다. 얇은 공책과 펜 하나씩에 앉거나 설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두 번째, 다시 그릴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였다. 고칠 수 없으니 선 하나를 그릴 때도 집중력과 각오가 필요했고, 이 진지함과 절실함 덕에 선 하나마다 애정이 스며들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과 AI 이미지와 다른 손 그림만의 특별함과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대중의 시선과 평가와는 별개로, 작가는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그렸다.
바쁜 일정 속에서 주로 기차에서 이동할 때 틈틈이 그렸다. 빈 갈색 종이를 바라보며 구상하고, 네모난 칸을 그려 컷 배치부터 한다. 본격적으로 그릴 땐 메인이 되는 이미지부터 시작해 배경을 그리고 몇 가지 안 되는 형광펜으로 채색한다. 설명처럼 손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기차가 크게 흔들리면 선을 긋다 종이를 찢어 버리기도 했고, 그림용이 아닌 저렴한 형광펜에 재생지라 얼룩이나 구멍도 생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넘어가다 보면 컬러가 채워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내레이션과 대사를 넣는데, 색칠하고 그릴 때도 그렇지만 글자를 쓸 때도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어 긴장감이 넘쳤다.
이렇게 선마다 글자마다 강렬한 집중력과 애정이 실리고, 컷마다 담고 싶었던 감정과 기억은 선명히 남았다. 세상의 모든 ‘봉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는 에세이로 분류되며 누군가의 일상을 담은 책이지만,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 ‘봉구’는 저자 본인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이면서 그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쓰고 그린 에세이가 저자 본인만의 감정을 그려 내는 이야기로 남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독자에게, 독자가 그에게 서로 공감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어느 독자라도 자신을 투영할 수 있도록 ‘봉구’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삶에 고민과 불안이 많은 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감정과 일상을 그렸다. 비단 누구 한 사람만의 모습이 아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일상이다.
인생도‥ 연습하는 만큼, 잘하게 되면 좋을 텐데
‘1장 봉구가 오늘을 사는 법’에서는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 평범하기 그지없는 현실 속 에피소드를 담았다. 조용한 곳에서 받아야 하는 급하고 중요한 전화는 꼭 화장실에 있을 때 걸려 온다. 가끔은 몸속의 유쾌, 상쾌 조절 장치가 고장 난 듯 이유도 없이 종일 기분이 가라앉는다. 지킬 수 없는 다짐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술과 헤어질 결심도 살과 헤어질 결심도 지켜지는 법이 없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해서 뭐든 1만 시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삶을 살아온 날들이 1만 시간을 훌쩍 넘을 텐데, 삶에 능숙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아쉬움을 1장에서 만나 공감할 수 있다.
함께라는 이유로 늘 든든하고, 함께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4장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주제는 사람들과의 관계다. 사람에게 상처도 받고 위로도 받는 우리의 복잡한 ‘봉구’의 인간관계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의 푸념과 속마음은 잘 들어주지만 내 이야기는 하기 어렵고, 한편으로는 하고 싶지만 안 하는 게 좋은 말을 참는 게 너무 어려운 순간도 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신이 나니 여럿과 어울리고 싶다가도 부정적인 감정에 덩달아 휩쓸리는 게 불편하기도 하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기분이 나쁘다가도, 누군가의 힘 내라는 말 한마디에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기도 한다.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든든하고,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존재도 사람이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이 좋은 마음. 4장에서는 이런 마음을 마주할 수 있다.
어느새 마음이 열리고 행복이 하나둘씩 찾아와
‘5장 그럼에도, 소소한 행복들’에서 봉구는 일상 속 작고 소중한 행복과 희망들을 보여 주며,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 보여 부러움이 들다가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 힘은 늘 내 안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을 만난다.
삶은 행복하기만 하지도, 불행하기만 하지도 않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불안불안한 일상이지만 그 작은 틈을 비집고 소소한 행복들이 찾아온다. 숨 돌릴 휴식 시간이 있고, 사소하지만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인사 한마디가 등장하기도 한다. 내 마음에 공감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응원을 받고 살아갈 힘이 생긴다.
함께라면,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연결한다면
저자는 봉구의 일상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이 비록 뒤죽박죽에 불안투성이일지라도,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찾아와 머문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는 우리의 불안 섞인 의문에 질문 형태로 답을 권한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연결한다면 분명, 어둡고 외롭고 답답한 이 삶에도 출구는 있지 않을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가 보여주는 봉구의 일상과 감정은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지 질문을 던지는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연결하는 경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