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프랑스 제2공화국이 의회의 무능력으로 인해 루이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의 친위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그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는 배경을 살펴본 마르크스의 소논문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마르크스 정치학의 자본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의 주저이자, 그의 경제학적, 사회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리고 그 방대한 두께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책장에서 꺼내 들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략한 책이 정치학의 자본론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본론』이 자본주의 경제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해부했다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정치권력의 장에서 그 법칙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실증적 분석서이자 정치학의 응용 편이었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반복된다는 사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몰락은 단순히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의회 의원들의 무능과 자기 모순적 행위들로 인해 예정된 것이었다는 사실 등을 밝힘으로써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한 인물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 낸 사건임을 성찰하고 있다. 마치 그가 『공산당 선언』에서 선언한 것과 유사하게, “하나의 유령이” 프랑스 제2공화국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보나파르트주의’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소논문에서 의회가 “최후의 무기마저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가 “죽은 뒤에야 묻혔음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즉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의회가 루이 보나파르트에게 제2공화국을 가져다 바쳤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로부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도출해 내는 마르크스의 탁월한 혜안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정치학의 자본론이라니, ‘정치’에 대해 한번 얘기해 보자. 공자는 정치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으로 ‘정명’을 꼽았다. ‘정명’이란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을 처음 출간할 당시 책 제목을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이라고 했던 마르크스는, 이 책의 영어판을 내면서 제목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로 바꾸었다고 한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본명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흔히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는 책 제목에서 나폴레옹을 빼고, 성인 보나파르트를 넣은 것일까? 그것은 루이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의 이름과 혈통에 기대고자 했으나, 결코 ‘나폴레옹’이 될 수는 없었음을 가리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나폴레옹의 이름과 민중의 지지로 황제가 된 루이 보나파르트는 엠스 전보 사건을 거치며 달아오른 프랑스 국민의 전쟁열을 무시할 수 없었고, 다가오는 전쟁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당에서 패배하여 포로가 되면서 폐위되었다. 이때의 처참한 패배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겁쟁이라는 조롱에 시달린 나머지, 그는 자신의 주치의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앙리 코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스당에서 겁쟁이가 아니었지 않소(N"est-ce pas que nous n"avons pas été des lâches à Sedan)?” 그의 말마따나 그가 스당에서 겁쟁이는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하고, 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나폴레옹 역시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나폴레옹이 일으킨 쿠데타의 이름, 즉 ‘브뤼메르 18일’로 일컬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가 삼촌인 나폴레옹이 일으킨 쿠데타의 재탕에 불과한 사건이었음을 명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제목은 마르크스 나름의 사평(史評)이 드러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오래된 책의 현재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 “정치학의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헤겔의 말마따나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반복”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끝이 난다고. 아니나 다를까, 한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South Korea just showed the world how to do democracy)”라는 찬사를 받았던 이 나라에서, 이제 다시는 감히 재현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사건이 재현되고야 말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작자가, 그것도 하필이면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보다 하루 늦게, 쿠데타를 자행하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최규하와 전두환을 한 몸에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은, 그 내적 모순으로 인해 루이 보나파르트조차도 되지 못한 채 루이 16세가 될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 아마 자신의 아내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비난이 쇄도할 때조차도 그러한 운명을 깨닫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한편, 우리는 그 어설픈 쿠데타의 순간에 이 소논문에서 읽히는 무능한 치들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유’와 ‘민주’를 줄기차게 외쳐 대고 상대를 향해 ‘독재’라는 비난을 쏘아 대고는, 정작 자유와 민주가 위협받던 순간에 국회가 아닌 자신들의 안락한 둥지에 숨어 있었던, 또는 국회의 담을 넘기보다는 그저 카메라에 남기를 선택했던, 비겁하고 저열한 군상을 통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프랑스 제2공화국과 달리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공화국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 그것을 지키고자 달려 나왔던 시민들이 있어 주었던 덕이다. 우리 시민은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쟁취했던 민주주의를 자신의 힘으로 지켜 내었고, 이제 국가의 반역자들은 자신의 반역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그 종말에 축복을 건네려 한다. “행복한 여행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