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사랑과 삶
“우리는 그리움 속에서 시들어 가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기도 한다.”
1979년 가을, 스물여덟 살이던 보뱅은 지슬렌 마리옹을 처음 만난다. 그들의 만남은 짧지만 강렬했고, 보뱅은 그 날이 바로 “하늘 꼭대기까지 닿도록 영원을 힘껏 던지는 두 번째 탄생”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고백한다. 그 후로 보뱅은 “가장 바쁘고도 고요한 방식”으로 지슬렌을 사랑했으며, 그녀는 보뱅의 삶에 생생한 빛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5년 여름, 지슬렌은 파열성 뇌동맥류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그해 가을과 겨울, 보뱅은 그녀의 부재로 인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이 책을 써내려 간다. 『그리움의 정원에서』는 지슬렌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마주하며, 그녀의 생생한 모습과 그들이 함께했던 순간들을 섬세하게 되살려낸 결과물이다.
보뱅은 이 책에서 지슬렌의 미소, 그녀의 따뜻한 행동, 그리고 그녀가 남긴 삶의 흔적들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수수께끼”로 묘사하며, 그 안에 담긴 온화함과 냉혹함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걷는다. “네 죽음은 수수께끼 같아서 그 안에 온화함이 있는지 냉혹함이 있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온화함을 받아들이려면 냉혹한 죽음의 실체마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보뱅이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너로 인한 그리움과 공허와 고통마저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의 가장 큰 기쁨이 된다. 그리움, 공허, 고통 그리고 기쁨은 네가 내게 남긴 보물이다. 이런 보물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음의 시간이 올 때까지, ‘지금’에서 ‘지금’으로 가는 것뿐이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체는 이 책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그는 일상적인 언어를 초월하는 시적인 문장으로, 지슬렌의 존재와 그녀의 부재를 동시에 포착한다. 그의 글은 마치 정원에 심어진 꽃처럼, 섬세하면서도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 보뱅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단순히 애도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지슬렌의 삶이 여전히 그의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을, 그녀의 웃음과 눈빛이 그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빛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상실의 비극을 다루면서도, 동시에 삶의 경이로움을 찬미하는 텍스트. 보뱅은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깊이를 드러내는 통로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지슬렌의 죽음을 통해 삶의 소중함과 사랑의 영속성을 깨닫고, 이를 독자와 공유한다. 그리하여 그의 문학적 여정에서 가장 내밀하고도 보편적인 이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사랑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하고, ‘어떻게 사랑했던 이의 부재를 견딜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 부재 속에서 여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건네며,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