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은 사유재산이 생겨난 이래로 존재해 온 범죄자 중의 하나이자 오랜 역사적인 산물이다. 굳이 고조선의 8조 금법까지 들지 않더라도 절도와 강도질을 기반으로 하는 도적질은 가장 오래된 범죄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도적질은 어느 시대든지 반사회적인 행위라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발생의 사회적 원인이나 활동 목적, 활동 양상, 사회와의 관계 등에서는 각 시대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새로이 조선시대 도적의 유형과 국가의 치도책(治盜策), 그리고 당시 크게 주목받은 이름난 군도들에 대해 글을 보태었다. 새로 정리한 이 책은 지금까지 조선시대 사회사 연구자들이 축적한 연구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본 책의 구성과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서장에서는 조선시대 도적에 대한 국가의 처벌을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조선시대 도적의 유형과 치도책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누가 도적이 되는지, 도적이 되는 원인은 무엇인지, 민과 도적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도적의 다양한 활동 형태와 다양한 칭호, 국가의 도적에 대한 처벌과 치도형, 도적을 잡기 위한 포도책과 포도청 설치 등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1장에서는 우리에게 실체보다는 소설 때문에 훨씬 더 유명해진 연산군대 홍길동에 대해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실존 인물로서의 그의 실체를 살펴보았다. 그가 활동했던 연산군 시절은 어떠했는지? 그는 언제, 어디서 활동했는지? 그는 진짜 양반의 서자였는지? 그를 보호해 준 뒷배, 당상관 엄귀손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홍길동이 끼친 영향과 후대인의 평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2장에서는 명종대 조선을 공포로 몰아넣은 군도의 우두머리 임꺽정에 대해 살펴보았다. 임꺽정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민란의 우두머리였다. 먼저 그가 활동하던 명종대의 정치·사회상을 살펴보고, 이어 임꺽정의 신분과 출생지, 주요 활동지, 그리고 그가 황해도로 옮겨간 뒤 군도의 우두머리가 되어 자행한 다양한 활동, 그와 그 무리들을 소탕하기 위해 노력했던 국가의 토벌 작전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숙종대 역모 세력의 입에 오르내린 사나운 명화적, 장길산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선행 연구에서 장길산은 누구보다도 그 실체와 전설적 간극이 큰 군도의 우두머리였다. 따라서 그의 실체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자 했다. 먼저 그가 활동했던 숙종대의 특징, 즉 극심한 자연재해, 거듭된 환국(換局)과 정치적 갈등, 와언(訛言)·요언(妖言)의 유행과 민중사상의 변화, 명화적·극적(劇賊)의 활동 증가, 이영창 역모 사건 발생에 대해 살펴보고, 그의 출현과 신분, 활동 지역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장길산의 실체에 대한 선행연구의 오류를 다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를 잡기 위한 국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과 그가 잡히지 않고 사라짐으로써 민간의 전설이 된 부분에 대해 살펴보았다.
4장에서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외에 조선의 이름난 군도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먼저 예종·성종대 활동했던 수적(水賊), 12 도적의 사회사: 조선을 뒤흔든 3대 도적-홍길동·임꺽정·장길산장영기 집단에 대해 살펴보고, 다음으로 성종대 활동한 김일동과 그 무리들, 또 연산군 9년에 평안도 안주에서 활동했던 홍자관과 그 무리, 그리고 중종대 고위 양반 행세를 하며 활동한 순석과 그 무리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을 크게 뒤흔든 3대 도적뿐만 아니라, 당대 이름을 떨친 크고 작은 군도들이 많이 출몰했었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서 조선시대 민들의 처지와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도적이 수도 없이 발생하고 이를 잡기 위해 중앙과 지방이 온 힘을 다해 소탕 작전을 벌였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고 싶었다. 왜 민들은 불법적인 도적이 되었는가? 군도 활동 속에 담겨 있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버리는 농민들, 그중에서 살고자 남의 것을 약탈하는 도적들의 발생, 그럼에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탐학을 일삼았던 탐관오리들, 군도의 발생은 단순히 포악한 성격을 지닌 범죄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와 경제의 모순 속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군도의 활동 속에는 사회적·경제적 억압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침 쳤던 민들의 원초적인 저항이 깃들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도적활동을 합리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