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화가들은 자기 작품 속에 무엇을 감춰 놓았을까?
세계 명화도 이제 ‘통ㆍ조ㆍ림’으로 읽어라!
논에 고인 물은 비가 내리지 않고 한동안 햇볕이 내리쬐면 금세 말라 바닥을 드러내지만 샘에서 솟아나는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샘의 원천’을 땅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세계 명화는 마르지 않는 원천을 품은 샘이다. 한 점 한 점의 명화는 『천일야화』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갈증을 풀어 준다.
사람과나무사이가 출간한 『세계 명화 잡학사전 통조림』은 세계 명화 89점에 감춰진 놀라운 비밀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수께끼, 신비로운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또 무심코 지나쳤던 그림 속 작은 사물, 인물, 배경이 암시하는 죽음과 운명, 화가와 모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는 거장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한 특별한 기법과 시대마다 명화가 말려든 일대 스캔들을 비롯해 명화에 대한 우리 상식의 허를 찌르고 통념을 깨뜨리는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빼곡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은 비유하자면, 89그루의 명화 이야기라는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자 89가지 기상천외하고, 은밀하고, 흥미진진한 명화 이야기라는 재료로 만들어진 ‘통조림’이다. 세계 명화도 ‘통째로, 조목조목 - 통ㆍ조ㆍ림’ 방식으로 읽으면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진실들이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일테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위대한 화가들은 자기 작품 속에 무엇을 은밀히 감춰 놓았을까?’
▣ 달리는 왜 밀레의 〈만종〉 속 농부 부부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으며 슬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을까?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농민 화가’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인물, 장 프랑수아 밀레. 〈씨 뿌리는 사람〉, 〈이삭 줍는 여인〉 등과 함께 〈만종〉은 밀레가 남긴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밀레는 자기 작품 〈만종〉 속에 무엇을 감춰 놓았을까? 그림에는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남편은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고개를 숙여 경건한 자세를 취하고 있고, 아내는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끌어당겨 마주 잡고 기도를 올리며 서 있다. 화면의 오른쪽 저 멀리에는 작은 교회가 보일 듯 말 듯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면 고요하고 아늑하며 평화롭기만 한 풍경이라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미술 전문가들도 대부분 그림 속 두 부부가 들판에서 일하던 중 ‘안젤루스의 종(매일 아침, 점심, 저녁에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교회가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종)’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장면으로 해석해 왔다.
오랫동안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온 이 해석을 거부하고 대담한 주장을 편 이가 있다. 〈기억의 지속〉 등으로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바로 그다. 그는 밀레의 〈만종〉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리는 그림 속 부부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들을 땅에 묻으며 슬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을 근거로 그런 주장을 했을까? 우선, 그는 그림 속 부부 사이에 놓인 ‘바구니’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바구니에 담긴 것은 수확한 작물이 아니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죽은 부부의 아기다.
밀레는 부모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남겼다. 그중 한 부모가 죽은 아들의 시신을 넣어 둔 관 앞에 서 있는 장면을 그렸다가 자칫 그림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흐를 것을 염려하여 바구니로 고쳐 그렸다.
달리는 자기 책에 이런 문장을 남겼다.
달리의 친구이자 그의 책을 출간한 출판사 사장은 그의 견해를 지지했다. 그러면서 그 사장은 달리가 위조지폐를 한눈에 찾아낼 정도로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또 “루브르 미술관에서 엑스선 검사를 한 결과, 바구니 아래에 아이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사람의 생각대로, 그림 속 농부 부부는 고된 일과를 마치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일까? 아니면 달리의 주장대로, 죽은 아들을 땅에 묻으며 슬퍼하는 것일까? 밀레는 과연 〈만종〉 속에 무엇을 감춰 두었을까?
▣ 고야의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 속 ‘흰 셔츠 입은 남자’의 모델이 예수라고?
프란시스코 고야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해진 화가다.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맘루크 기병과의 싸움”〉과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 연작이 그 그림들이다.
이 연작 그림의 배경이 된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란 무엇일까? 1808년 5월 2일, 불세출의 정복 군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침략한 사건이다. 당시 무능한 군주 페르난도 7세는 마드리드를 포기하고 도망쳤으나 시민들은 프랑스군에 굴복하지 않고 무장 봉기해 당당히 맞서 싸웠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고, 마드리드 시민 상당수가 프랑스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 마드리드에 머물던 고야는 자신의 별장 창문 너머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 분노로 치를 떨며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 고야는 희생당한 이들의 시신을 하나하나 등불을 밝혀가며 세밀히 스케치했다.
프랑스 군대의 마드리드 시민 학살 사건을 소재로 그려진 연작은 가로 길이만 3미터 5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형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고야는 나폴레옹 군대의 무자비한 학살이 초래한 끔찍한 비극과 마드리드 시민들의 영웅적인 행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특히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 또는 “학살”〉에서 처형자들을 마주한 희생자들의 비장한 항의의 몸짓, 처연한 표정, 눈을 가린 채 괴로워하는 이들에게서 보이는 감정 표현은 너무도 생생하다.
이 그림에서 단연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흰 셔츠 입은 남자’다. 그는 총을 겨눈 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조국을 끝까지 지켜내기 위해 양팔을 한껏 벌린 채 서 있다. 고야는 누구를 모델로 ‘흰 셔츠 입은 남자’를 그렸을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다. 그 남자의 손바닥에 난 못 박힌 상처 자국(성흔(聖痕, stigmata))을 방증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고야는 왜 예수를 모델로 삼아 마드리드 학살 사건 희생자를 묘사했을까? 아마도 그는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통해 마드리드 시민들의 숭고하고도 영웅적인 희생을 기리고자 한 게 아닐까.
▣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속 여신의 모델이 젊은 세탁부였다?!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남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그는 1830년 파리에서 일어난 7월 혁명을 소재로 이 그림을 그렸다.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그림 중앙의 삼색기를 들고 민중을 이끄는 여인은 여신으로 볼 수 있다. 이 여인, 즉 여신은 ‘자유’를 의인화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오른손에 든 삼색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깃발을 치켜든 여신의 오른팔 밑 겨드랑이에 검은 털이 나 있다는 사실이다. 숭고하고 신성한 여신의 겨드랑이에 털이 나 있다? 이게 과연 당대인들에게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을까? 당연히 아니다.
1831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파리 살롱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그림 속 자유의 여신 겨드랑이털 묘사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어떤 비평가는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을 거리에서 ‘생선을 파는 여인’ 혹은 ‘몸을 파는 여인’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들라크루아는 왜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을 통념과 관례대로 대리석처럼 새하얗고 아기 살갗처럼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순결한 여인으로 묘사하지 않고 현실의 여인 이미지로 창조했을까? 그런 상식과 관례를 몰랐을 리 없는 화가가 겨드랑이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생생한 현실 속 여인의 모습으로 여신 이미지를 창조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그는 이상적인 여신 이미지보다 혁명에 실제로 동참한 용감한 현실 속 여성의 모습을 통해 그 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 혁명의 열기와 투쟁의 생생함을 전하고자 한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누구를 모델로 삼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주인공을 창조했을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들라크루아가 세탁부로 일하던 한 젊은 여인에게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는 주장이다. 그 여인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동생을 잃어버렸는데, 그 바람에 자신이 속옷의 일종인 페티코트만 걸쳤다는 사실도 잊은 채 미친 사람처럼 동생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프랑스군의 총탄을 맞고 싸늘한 시신이 된 동생을 발견했고, 동생의 복수를 위해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흥미롭고도 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과연 들라크루아는 현실 속 누구를 모델로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창조했을까?
그 밖에도 이 책에는 화가 자신이 자기 그림에 카메오, 아니 주인공으로 출연한 사연을 담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야기, 예수의 자손을 찾아 프랑스 왕으로 복귀시키려는 시온 수도회의 은밀한 계획을 감춰 놓은 니콜라 푸생의 〈아르카디아의 목동〉 이야기, 그림 속 여인이 뭔가를 재고 있는 저울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날카롭게 통찰하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저울을 든 여인〉 이야기, 단순한 그림을 넘어 두 남녀의 혼인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해 주는 ‘결혼 증명서’의 성격과 역할을 담당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이야기, 화분 뒤에 화가의 얼굴을 교묘히 숨겨 놓은 조르주 쇠라의 〈화장하는 젊은 여인〉 이야기, 재혼한 아내의 이름 밑에 정체 모를 여인을 감춰둔 앙리 루소의 〈나, 초상 - 픙경〉 이야기, 그림 속 여주인공의 척추뼈가 정상인보다 3개나 더 많다는 기상천외한 비밀을 품고 있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 이야기, 그림 속에 ‘해골’ 이미지를 은밀히 감춰두어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함으로써 겸손한 삶을 살도록 돕는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이야기, 자신의 최대 라이벌 미켈란젤로를 주요 인물로 그려 넣은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테네 학당〉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인류가 남긴 가장 매력적인 유산 세계 명화를 둘러싼 기상천외하고,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89편의 이야기
ㆍ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속 나폴레옹은 실제로 ‘말’이 아니라 ‘당나귀’를 탔다고?
ㆍ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이 여러 장 존재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뒷받침하는 ‘사라진 기둥’의 깜짝 놀랄 비밀은?
ㆍ 클림트는 왜 달콤한 키스 장면을 빌려 정반대되는 ‘죽음’을 암시했을까?
ㆍ 조토는 왜 〈동방박사의 경배〉에 ‘베들레헴의 별’ 대신 ‘핼리혜성’을 그려 넣었을까?
ㆍ 동생 테오의 아내 요하나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 빈센트 반 고흐도 없었다?!
ㆍ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왜 그토록 자주 ‘창문’이 등장할까?
ㆍ 다빈치는 왜 〈최후의 만찬〉 식탁에 주요리로 양고기 대신 ‘생선’을 그렸을까?
ㆍ 그림 속 성모 마리아는 왜 예외 없이 파란색 옷을 입고 있을까?
ㆍ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의 모델이 그의 연인 알바 공작이었다고?
ㆍ 뭉크가 〈생명의 춤〉 모델에게 총격당한 이유는?
ㆍ 밀레의 걸작 〈이삭 줍는 여인들〉은 왜 한때 ‘추한 그림’으로 낙인찍혔을까?
ㆍ 브뤼헐은 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가 아닌 로마의 콜로세움을 모델로 바벨탑을 그렸을까?
ㆍ 클림트는 왜 여성을 그릴 때 벌거벗은 몸을 먼저 그린 뒤 옷을 그렸을까?
ㆍ 화가 에곤 실레의 인생이 독재자 히틀러의 인생과 거의 백 퍼센트 일치한다는데?!
ㆍ 모네는 왜 대중의 찬사를 받은 자기 작품 〈일본 여인〉을 졸작으로 깎아내렸을까?
ㆍ 보티치니의 〈토비아스와 세 대천사〉에 다빈치가 모델로 등장한다고?
ㆍ 시게루는 왜 〈바다의 양식〉을 완성한 다음 뒤늦게 자기 애인을 그려 넣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