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간 중심주의 비판과 비인간/소외된 존재들의 목소리
최빛나라는 중국 괴담 「모란등기」의 동아시아적 번역 양상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살핀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 ‘인귀(人鬼)’ 서사가 인간 중심적 폭력성과 경계의 문제를 서사적으로 드러내는 과정을 분석한다.
허윤은 로봇, 인조인간 등의 존재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 SF를 분석하며, 노동 가능한 신체만을 시민으로 인정하는 근대 시민권 체계와 능력주의를 비판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의 한계도 함께 지적하며, ‘일할 수 없는 몸’의 존재를 통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한다.
제2부: 아동 주체의 형성과 문화적 정체성
최기숙은 『소년』과 『아이들보이』라는 아동 잡지를 통해, ‘소년’이 근대적 문화 주체로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 매체들이 근대 교육, 문화, 정체성 확산에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최은혜는 1930년대 사회주의 문학 진영의 아동문화 전략을 분석한다. 『별나라』, 『신소년』 등은 아동을 혁명의 주체로 형성하고자 했으며, 정동과 참여 중심의 실천을 통해 사회주의적 아동 만들기를 시도했다.
장영은은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통해 한국전쟁 고아들의 트라우마가 새로운 관계 형성과 치유의 원천으로 작동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이는 트라우마의 반복성과 수행성 개념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제3부: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디어 속 정체성 재구성
이은우는 드라마 〈도깨비〉 속 삼신 신격을 분석하여, 전통적 돌봄과 생명 창조의 가치가 현대 서사로 재해석되고 확장되는 양상을 설명한다. 삼신은 돌봄의 관계망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중심으로 작용한다.
고지혜는 영화 〈E.T.〉의 수용사를 통해 1980년대 한국 아동청소년 문화 속 외계인과 어린이의 우정을 조명한다. 〈E.T.〉는 적대적 외계인이 아닌 감정적 교류가 가능한 존재로 그려지며, 긍정적인 문화 접촉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권선경은 애니메이션 〈신비아파트〉에 나타난 무속적 해원 구조의 콘텐츠화를 분석한다. 전통적 원혼 개념이 현대적 미디어 문법에 맞게 재구성되며, 사회적 소외 존재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단지 학술적 탐구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와 비인간의 목소리를 통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넘어서려는 실천적 시도를 담고 있다. 익숙했던 인간의 범주를 해체하며, 말해지지 않았던 존재들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독자에게도 보다 넓고 유연한 사유와 공존의 상상력을 제안한다. 어린이와 비인간이라는 타자의 자리를 다시 묻고, 그들을 중심에 두는 관점이 현대 인문학에 어떤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제시하는 중요한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