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고 남은 건 풍경이 아니라 삶이었다
한 끼, 한 철, 한 계절로 배워가는 제주
여행이 끝나도 여행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살이에는 여유만 있는 게 아니다. 낯설음, 호기심, 생활력, 사람 냄새가 고루 섞여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진짜 제주살이에 대한 기록, 여행이 끝난 자리에 다시 시작된 ‘생활의 기록’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살고 싶은 섬’을 하나 만들어주는 다정한 에세이다. 익숙함에 젖기보다는 새로움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태도, 속도를 내려놓고 계절과 리듬에 귀 기울이는 자세, 그리고 매일의 소소한 일을 여행처럼 마주하는 감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섬의 리듬을 따라 쓴 제주 생활의 기록
여행 작가였던 저자는 제주로 삶의 기반을 옮기고, 천천히 ‘도민의 언어’와 ‘섬의 리듬’을 익혀간다. 이 책에는 제주에 정착한 한 작가가 보고 듣고 느낀 제주의 일상들이 소박하고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관찰자의 시선’이 아닌 ‘생활자의 언어’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표선목욕탕 언니들이 챙겨주는 여름 쌈밥, 고사리를 따러 중산간 도로에 빼곡히 늘어선 자동차들, 낚시꾼의 손에 들려 돌아오는 조과, 이름도 생소한 ‘고즐맹이’ 한 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장길. 이 모두가 느슨하지만 분명하게 제주를 이루는 조각들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제주의 삶은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사려 깊으며, 무엇보다도 생생하다.
관광지로만 알았던 제주의 참모습, 도민들이 살아가는 진짜 풍경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주에서는 일하는 날도, 만나는 약속도, 날씨에 따라 정해진다. 비가 오면 농사를 미루고, 바람이 불면 계획을 바꾼다. 오일장에서 아강발을 사고, 성산읍 어귀에서 고사리 앞치마를 발견하며, 함덕해변에서 커피를 마시다 문득 계절을 자각하는 순간들. 제주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바람처럼 불고, 사람의 인사는 바다처럼 밀려왔다가 사라진다.
그 유연함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작가는 점점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삶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마음은 조금씩 느긋해진다. 그리고 이 느슨하지만 진한 관계의 섬에서, ‘여행하듯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익혀나간다.
바람에 따라 계획을 바꾸고, 햇살에 따라 하루를 정하는 삶
이 책에는 각 장면마다 사람이 있고, 제철 음식이 있고, 바람과 파도가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도 그곳의 언덕을 걷고, 시장의 냄새를 맡고, 표선 바닷가의 고양이들에게 인사를 건넬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제주 어딘가에서 고사리를 따고, 자리를 구워 막걸리를 따르고, 고양이에게 사료를 건네며 해질녘의 하늘을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여행의 끝자락에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싶은 당신에게, 그 여행을 삶으로 이어가고 싶은 당신에게 권하는 한 권의 연습장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