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구성과 문체, 접근법 모두 검사다움을 드러낸다. 즉 체계적이고 빈틈없으며, 때로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적 친밀감도 이따금씩 드러낸다. 특히 그가 증거를 치밀하게 제시하며 배심원들의 최종 판결에 호소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판결의 미학을 보여준다. 인간 이성의 정점이 드러나고, 광기가 흐르는 사회 저변에 대해 법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더없이 보여준다. 이것은 이 범죄가 인간 존재를 가장 무의미하게 만들며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이뤄졌기에 극렬한 대비 효과를 드러낸다.
독자가 살인 사건을 읽는다면 누구의 관점을 취하는 게 가장 좋을까? 게다가 역사에 획을 그을 만큼 지각변동을 일으킨 커다란 사건이라면. 읽기는 ‘관점’이다. 관점은 기본적으로 사실(진실)과 관찰에 기반한다. 그리고 맨슨 패밀리의 살인 사건을 진실에 가장 가깝게 풀어낼 역량을 지닌 사람은 다름 아닌 담당 검사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증거와 관찰에 근거해서만 이야기하고, 상상력은 억누르며, 맨슨이 지녔던 신비주의적 종교의 관점을 배격하고, 당시 여론이 맨슨에 대한 옹호로 이어졌던 것에 전혀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분만 보는 것은 현상을 왜곡한다. 모든 자료, 모든 사람, 모든 입장과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전체 시각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보자면 변호사는 좋은 관찰자기 되기 힘들다. 그는 자신의 의뢰인을 변호하고 형량을 낮추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여론의 영향을 크게 받고 직접 증거를 많이 수집할 수 없어 추측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검사 부글리오시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어떤 범죄는 한 사회를 관통한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거기 있던 이들은 가령 집단살인과 같은 공포에 둔감해지며 비슷한 사건이 반복돼도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회는 결코 사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선 맨슨 살인 사건을 간단히 요약해본다.
·사건 1: 1969년 8월 8일 밤, 로스앤젤레스 시엘로 드라이브 10050번지에서 샤론 테이트, 제이 세브링, 애비게일 폴저, 보이텍 프라이코프스키, 스티븐 페어런트가 살해됨.
·사건 2: 이튿날인 8월 9일, 웨이벌리 드라이브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 사장 레노와 그의 아내 라비앙카가 살해됨.
·범인: 찰스 맨슨 그리고 그의 패밀리(찰스 “텍스” 왓슨, 수전 앳킨스, 퍼트리샤 크렌윙클, 레슬리 밴하우튼). 맨슨은 살인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지시하고 영향력을 발휘함. 린다 캐서비언은 범죄 현장에 함께 갔으나 살인하진 않았고 이후 주요 증인이 됨.
·재판 과정과 결과: 찰스 맨슨과 그 외 4명 모두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짐
똑똑하고 명민하고 강하고 공정했던 부글리오시 검사는 사건을 배정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끌 줄 몰랐다. 배심원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배심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나 여론으로부터 격리되어야 했기에 예기치 않게 8개월간 호텔에 갇혀 지내게 된다.
사건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희생자 한 명이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영화배우인 샤론 테이트였기 때문이다. 나머지 희생자들 역시 캘리포니아의 저명하고 부유한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과잉 살인이어서 공포를 불러일으켰는데, 이를테면 라비앙카는 41회 찔렸고, 프라이코프스키는 51회 찔린 데다 총을 두 발 맞았으며, 권총 손잡이로 머리를 13회 가격당했다. 시신이 된 그들은 사후 상태에서도 계속 찔렸다. 주검을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악몽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부글리오시의 가장 큰 공로는 ‘범죄의 동기’를 재구성해낸 데 있다. “검찰은 동기를 증명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다. 하지만 동기는 대단히 중요한 증거다. 배심원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며, 동기가 없으면 무죄의 정황 증거가 된다.” 이 사건에서 동기를 증명하는 것은 다른 사건에서보다 훨씬 더 중요했는데, 왜냐하면 이 살인들이 완전히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다. 살인 사건 현장에 범인들은 피해자의 피를 찍어서 ‘일어나라’ ‘돼지에게 죽음을’ 그리고 ‘헬터 스켈터’라는 문자를 남겼다. 헬터 스켈터란 단어를 들어본 독자들도 있을 텐데, 바로 비틀스의 노래 가사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찰스 맨슨이 쓴 이 단어는 심판의 날, 아마겟돈과 같은 의미로, 자신이 선택한 이들이 온 세계로 나가 사람들을 무작위로 골라 처형하고(기성 체제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돼지’다), 세상을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이것은 억눌렸던 흑인들이 승리자가 되는 인종대학살을 뜻했다.
책의 앞부분은 일부 수사관의 무능함과 안이함, 변호사들의 재판 방해 전략을 다루다가 본론에서 재판 과정을 조명한 후에는 사형 언도를 받았던 범인들의 최후를 쫓는다. 독자라면 누구나 사건 이후를 궁금해한다. 사건은 ‘과거’에 벌어졌고, ‘현재’ 그에 대한 심판을 받는다면, ‘미래’에 그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며 살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범죄의 동기는 언제나 범인의 성장 배경이라는 과거에서 찾아지며, 현재는 범행을 저지른 자의 결단의 시간이다. 아무리 불행한 배경을 가진 자라도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행위자의 결정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나아가 범죄자의 미래가 참회나 죄책감으로 이루어져 있을지, 우리는 그 과정을 목격하길 바란다.
이 사건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수많은 여론에 휩쓸렸다. 이에 따라 ‘사회’가 범죄자들을 만들어냈다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멈추게 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법이 작동하는 방식, 증거 규칙, 판사의 역할, 제한 사항 등을 살펴보는 것이며, 이것은 시스템 안에서 이뤄진다. 물론 시스템에는 약점이 많은데, 가령 증거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거나 정신과 의사의 정신감정을 악용해 범인이 보석금으로 풀려나는 것 등이 있다. 저자는 이런 점들도 철저히 검토한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저자가 모든 피해자에게 동등한 비중과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며, 저자의 주석도 유의해서 볼 만하다.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검사로서 사건의 조사 및 발표 방식에 대한 설명, 인물에 대한 배경 정보, 분위기 등을 내부자로서 상세히 적어 본문만큼이나 흥미롭다.
이 범죄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진행되고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살인 재판으로, 9개월 반이 걸렸고, 약 100만 달러가 투입됐다. 그리고 가장 요란했던 재판이다. 배심원들은 225일 동안 격리되었는데, 이전의 어떤 배심원들보다 긴 시간이었다. 재판 기록은 209권, 3만1716쪽, 약 800만 단어로, 소형 도서관 규모였다. 이 배심원들이 치른 사후 대가도 컸다. 고용인에게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몇몇 배심원은 뒤늦게 급여를 받을 수 없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피고 측 변호인들이 입은 재정적 손실은 어마어마해서 말 그대로 “거덜났다”. 반면 다섯 명의 피고인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1년 후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사형제도를 위헌으로 판결함에 따라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살인 집단의 리더 맨슨은 비도덕적인 게 아니라, 총체적으로 무도덕적이었다. 그는 여성들 한 명 한 명에게 칼을 주며 “돼지들의 목을 가르는” 시범을 보였다. 머리채를 잡고 고개를 젖힌 후 귀에서 귀까지 칼로 긋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귀나 눈을 찌른 다음 칼을 휘저어서 치명적인 조직에 최대한 닿게 해야 한다”고 했다. 맨슨은 또한 추후 경찰 돼지들을 죽이고, 작게 토막 내서 머리는 삶고, 해골과 제복을 장대 끝에 꽂아 다른 사람들을 겁줘서 몰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즐겨 쓴 격언 중 하나는 “어떤 의미도 의미 없다”였다. 그는 여성 셋을 이 살인에 동원했는데, 사실 “그의 기본 신조 중 하나는, 여자들이란 떡치는 용도밖에 없다”는 거였다. 이 책을 읽어가노라면 여성을 끌어들이는 데 그가 성性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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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부글리오시 검사는 수많은 증인의 입에서 나온 조각 하나하나를 모아 파괴력 있는 묶음으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아주 강하게, 확신에 차서, 오직 찰스 맨슨만이 동기를 만들어낸 주범임을 입증해나간다.
이 책은 더욱이 법정에서의 문답을 상당 부분 그대로 재현해 현장감과 사실성, 구체성을 뛰어나게 드러낸다. 나아가 책 말미에 긴 분량으로 쓰인 살인자들의 생애 추적 역시 책의 탁월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