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도 즐겁고 좋으니까 계속하는
호기로운 마음의 세계
작가는 말한다. ‘못하는데 어째서 이리도 즐거울까.’ 작가는 답을 안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게 재능이고 소질이기에 계속할 수 있다. 수행평가를 대비하려고 학원에서 리코더를 배우는 초등학생은 일찍 끝내달라고 조르지만, 시간과 돈을 들여 제 발로 학원을 찾은 ‘어른 학생’은 배우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운다.
또 막막한 원고 마감을 앞둔 마음의 피난처가 되어주기에 리코더를 손에 잡고, 잘하고 인정받아야 하는 본업의 삶에 틈이 되어주기에 리코더를 입에 문다. ‘(못)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는 나’의 시선을 느끼며 미적거리는 대신, 삑사리의 어두운 골짜기 앞에서 머뭇거리는 대신, 자신 있게 숨을 불어넣는다. 그야말로 호기로운 마음의 세계다.
“프로필에 ‘아마추어 리코디스트’라고 적을 때 느끼는 은밀한 소속감은 나를 건강하게 지켜준다. 취미 생활에서마저 치열한 ‘갓생’을 살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서툴러도 즐거울 수 있다는 마음, 내가 몰두해서 살아 있음을 만끽하는 게 곧 쓸모라는 태도가 때로는 효율과 성과의 차가운 세계로부터 우리 정신의 체온을 유지해준다.”
이 작고 가는 악기가 이끄는 유쾌하고 애틋한 항연
그리고 뜻밖의 완연한 성장 드라마
어린 시절의 리코더를 회상하면서 작가는 “그 모든 거절과 실망이, 가난과 여유 없음이, 결핍과 우연이 나를 리코더에게로 이끌었다. 지금의 내가 되게 만들었다”라고 말한다. 그 무렵의 기억이 매거진에서 20년 넘게 일한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30년 만에 시작한 리코더는 작가를 또 다른 세계로, 영원히 지루하지 않을 세계로 이끈다. 김하나 작가와 코로나 시절 결성한 ‘서울사이버음악대’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연주회로 시작해 동네 서점에서 연주회를 열더니 급기야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 공개방송의 8백 명 관객 앞에서 공연을 하는 데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책에는 배우고 연습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악보를 구하고, 리코더에 맞게 조옮김하고, 맛깔 나는 소리를 위해 기교를 연마하고, 틀리지 않으려고 또 연습한다. 못해도 즐겁지만 기왕이면 잘하고 싶으니까.
“30명 앞의 책방부터 8백 명 객석의 대극장까지 여러 무대를 거쳐왔다. 그 3년 동안 내 리코더 실력이나 기교가 발전한 것도 맞다. 그런데 더 크게 성장한 건 부족한 실력을 다루는 배짱이며, 나로서 할 수 있는 최고치가 이만큼임을 받아들이는 겸허함이고, 관객들의 호의에 대한 믿음이다.”
작가는 “음악으로 감동을 자아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웃기기도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닌데 리코더는 그걸 자주 해낸다”고 말한다. 리코더가 그러하기 때문일까. 이 책 역시 그렇다. 유쾌한 날들과 애틋한 사건들의 스냅샷이면서도, 40대에 발견한 리코더 재능과 그 재능을 계기로 찾아든 기회, 연습과 노력으로 채운 시간들을 담은 이 책은 좋아하는 게 재능이고 소질인 한 사람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완연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