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껌을 삼킨 자들은 어떻게 시장을 혼돈에 빠트렸는가
이 책은 40편의 소설에서 경제사의 변곡점이 된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대별로 구성했다. 17세기 세계 최초의 상품거래소 이야기를 시작으로 17~18세기에 터진 거대한 금융 버블과 19세기 산업혁명, 20세기 대공황과 신자유주의, 21세기 금융위기와 경제적 패권전쟁 그리고 AI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앞둔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주제들이 소설 안에서 펼쳐진다.
첫 번째 챕터는, 제목 ‘버블 껌을 삼킨 자들의 세상’이 암시하듯 초기 자본주의 3대 금융 버블인 ‘튤립 버블’과 ‘남해 버블’, ‘미시시피 버블’을 조명한 소설들로 시작한다. 버블은 경제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튤립 구근 하나가 축구장 7개 면적과 맞먹는 돈으로 거래되는 살풍경을 연출할 정도로 터무니없었지만, 실제로 일어났다(26쪽). 버블의 설계자 중에는 수학에 능통한 이코노미스트이자 도박사였던 존 로(John Law) 같은 인물이 유명한데, 그는 은행 설립을 위해 〈화폐와 무역 : Money and Trade〉라는 책까지 집필했다(34쪽). 신대륙에서의 금광 개발 프로젝트를 미끼로 투자금을 모으고 은행에서 화폐를 찍어 종잣돈을 대는 수법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횡행했던 행태였다. 버블의 공모에 은행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44쪽). 버블로 신뢰를 잃은 은행이 뱅크(Bank) 대신 크레디트(Credit)로 아예 이름을 바꾸고자 했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소설 〈북과 남 : North and South〉에서 산업혁명의 민낯인 노동착취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다.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노사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당대 비평가들의 왜곡된 시선을 개스켈은 소설을 통해 정면으로 배격했다(62쪽).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가 〈21세기 자본 :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에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 Le Père Goriot〉을 인용해 세습자본주의를 역사적으로 조명했다면, 저자는 한때 ‘혁명시민’으로 불리던 파리지앵이 ‘연금시민’으로 전락하게 된 배경을 꼬집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연금은 ‘국채’의 성격을 띠었는데, 저자는 당시 프랑스 정부가 국채 발행을 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파고든다(86쪽).
영국과 프랑스가 거대 혁명의 비싼 수업료를 치르는 동안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골드러시가 한창이었다. 저자는 캐나다 작가 패트릭 드윗의 소설 〈시스터스 브라더스 : Sisters Brothers〉를 통해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당시 금광 개발 붐이 전 세계 물가를 30%p 상승시키며 금본위제의 마중물이 된 현상을 탐사한다(102쪽).
골드러시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1930년대 조선은 황금광 시대로 불릴 만큼 금 투자 열풍에 휩싸였다. 저자는 채만식의 소설 〈금의 정열〉에서 ‘황금鑛 시대’를 ‘황금狂 시대’로 풍자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일제가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에 소요된 막대한 군비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에서 금 착취에 몰두했던 사실을 고발한다(168쪽).
20세기 위험한 개츠비들의 욕망게임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세기를 다룬 두 번째 챕터의 제목은 ‘위험한 개츠비들의 시대’다.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 : The Great Gatsby〉를 비튼 것인데, 저자는 개츠비로 대표되는 소설 속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거대한 버블을 반복해온 인간의 탐욕을 경제학적으로 접근해 분석한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욕망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으로 보았고, 시장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경제현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욕망이 반드시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욕망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탐욕으로 폭발하는 순간 시장은 자정능력을 상실하고 세상은 혼돈에 빠지고 만다. 많은 소설가들은 바로 그 순간 인간의 야성적 충동이 빚어낸 시대상을 서사로 빚어냈다.
경제학자 앨런 크루거는 소설 속 개츠비가 이뤘다고 착각한 아메리칸드림의 허상을 세대간 소득탄력성과 지니계수를 이용한 불평등지수로 환산하여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란 별칭을 붙였다. 전문가들은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인용하면서, “아메리칸드림은 미국이 아니라 덴마크에서 달성된다”는 식의 논평을 내며 미국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저격했다(144쪽).
저자는 욕망이 비대해질수록 불평등의 격차가 커지는 현상들을 소설들을 통해 낱낱이 소명한다. 가령 퓰리처상에 빛나는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 : Trust〉에 등장하는 “자본이 자본을 낳고 그 자본이 또 자본을 낳는 돈의 근친상간적 계보”라는 표현에서, 욕망의 연속성이 어떻게 부의 세대간 이동가능성을 높이는지 주목한다(152쪽). 이 과정에서 트러스트가 ‘신뢰’와 ‘독점’으로 함께 읽히는 금융자본주의의 기이한 면모를 짚어낸다.
아울러 저자는 이른바 ‘욕망의 대중화’가 부동산 투기에서 정점에 이르는 모습을 여과 없이 비춘다. 박완서의 단편소설 ‘낙토의 아이들’을 통해 1970년대 강남 개발 현장에서 복부인의 정체성을 되짚어보는가 하면(192쪽), 조남주의 소설 〈서영동 이야기〉(274쪽)와 정아은의 소설 〈잠실동 사람들〉(282쪽)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부를 향한 노골적인 속성(혹은 속물근성)이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존 란체스터의 소설 〈캐피탈 : Capital〉을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쇼크로 인한 영국의 노던록 뱅크런 사태를 함께 소환하며, 부동산 투기가 한국사회의 특유한 현상만은 아님을 밝힌다(234쪽). 그 시절 한국과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이른바 중산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집 이야기 밖에 하지 않았다”는 저자의 표현은 결코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들이 놓친 인사이트를
소설가들이 포착해낸 NOVELNOMICS
이 책을 읽고 나면 세 번째 챕터에서 던진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란 미래의 선택지가 어디로 귀결될지 깨닫게 된다. 21세기에 사람들은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겪었고 기괴한 역병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뒤숭숭하다. 세계 곳곳이 지정학적 위기와 전쟁 소식으로 도배되면서 경기는 어둡고 시장은 혼탁하다. 이 책에서 밝지 않은 미래를 목도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미덕은 놀랄 만큼 근사하다. ‘트럼프식 MAGA 복음’, ‘극단주의’, ‘디지털 양극화’, ‘AI 이노베이션 혹은 인베이전’ 등 우리가 현재 봉착해 있거나 앞으로 겪을 가능성이 높은 일들을 소설가들은 멀게는 60여 년 전(마이클 영의 〈능력주의 : 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가깝게는 10여 년 전(라이오넬 슈라이버의 〈맨디블 가족 : The Mandibles, 2029년~2047년의 기록〉)에 예측해냈다.
연말 연초만 되면 서점가에 경제전망서가 쏟아지지만 만족할 만한 인사이트가 담긴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반면 전 세계 유능한 이코노미스트들이 놓친 인사이트를 소설가들이 앞서 포착해냈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기업과 국회, 정부를 오가며 30년 넘게 경제 정책에 몸담아온 저자가 소설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