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미아를 목격한 그 자리에서 작가도 눈물짓다
『미아』는 김이은 작가가 다산 정약용의 장편서사시 『도강고가부사(道康瞽家婦詞)』를 소설로 집필한 것이다. 『도강고가부사』는 ‘맹인에게 시집간 아낙의 이야기’라는 뜻으로,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보고 들은 것을 시로 적어 기록했다. 유교문화와 가부장제가 사회 제도를 지배하고 지방 관리들의 수탈이 극심했던 조선 후기에 당시 하층민들의 비참했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문학을 전공하기도 한 작가는 다산의 서사시에서 가련한 한 여인의 안타까운 삶을 만나면서 소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의 시대상과 제도, 인물들의 삶을 구체화하기 위해 많은 역사 자료와 연구 논문을 보고 체화하는 과정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집필을 시작해 소설이 나오기까지는 십 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열아홉 나이 이후로는 더 쓸 수 없었던 한 여인의 어린 삶이었지만, 그 삶을 오롯이 건져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그 시간은 작가가 슬픔을 견딘 세월이기도 했다.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 공을 들이고 정성으로 빚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장 깊은 슬픔을 자아낸다. 반짝이도록 아름다운 것이 눈물로 떨어지는 슬픔이 되고 마는 경험은 낳설지만 굉징한 감화의 힘을 느끼게도 한다.
이 작품은 스스로도 비참했던 유배 시절의 다산 정약용이 더없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한 여인을 2백여 년이 더 흐른 뒤에 김이은 작가가 비로소 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되살려낸 것이다. 이제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실존했지만 역사에 없는 무명의 여인을 기릴 수 있게 되었다.
맹인 점바치에게 팔아넘겨져 비극의 굴레에 갇힌 한 여자의 가련한 초상
미아는 몰락한 양반 유건창과 곡비 막례 사이에서 태어났다. 유건창이 초상집에서 처녀 막례를 겁탈해 임신시킨 것이 그녀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어미 막례는 유건창 집안에서 죄인 취급을 받으며 날마다 힘든 노동에 시달렸고, 그런 환경에서도 딸 미아는 이마가 맑고 눈빛이 고요한 아름다운 처녀로 자라났다.
그러나 가장 친한 친구 덕선이 양반 이만종에게 겁탈당하는 현실을 목격하며 미아는 이 나라가 여성에게 얼마나 끔찍한지 깨닫는다. 온갖 편견과 모함에 시달리던 덕선이 죽임까지 당하자 미아는 불합리한 세상에 분노하며 오열한다.
미아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와 미래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결국 둘 사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미아에게 앙심을 품었던 아전에게 겁탈을 당하면서 그녀의 삶은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딸이 정조를 잃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아비 유건창은 부자 소경 점바치 박판수에게 팔아넘기기로 한다. 앞 못 보는 위악한 노인과 강제로 혼인하면서 미아는 헤어나올 수 없는 불행의 굴레에 빠진다.
소설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여인의 삶을 조용히 뒤따라가지만, 고통스럽게 읽히지만 않는 것은 빚어낸 듯 아름다운 문장 덕분이다. 독자가 아파할 것을 감안한 것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문장들이 고통을 상쇄시키고, 대신 슬픔에 집중하게 한다.
독자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미아를 떠올리고, 애도하는 의식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시대를 가리지 않고 현재까지도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의 삶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아직도 눈물 흘리는 미아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미아의 삶을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계속 겹치면 조금씩 단단해져서 다른 미아들을 구해낼 놀라운 힘을 발휘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