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다 꿈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고 있죠”
진실로 지금 깨어있는 이는 누구인가
심리 스릴러, 그 이상의 스릴러
인간은 평균 33년을 잠으로 보낸다. 그러나 꿈이 아닌 잠들어 있는 동안의 현실을 인식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몸과 마음이 멀찍이 떨어져 삶에 커다란 구멍을 만드는 시간. 하지만 어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행동을 자면서 해낸다. 체념증후군을 치료하기 위해 안나의 과거를 조사하던 벤은 그녀가 몽유 증상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안나가 살인자가 되었던 ‘그날’에 집중하는 대신 몽유 증세를 일으켰던 사건들, 그녀의 삶 곳곳에 새겨진 체념의 순간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벤은 안나가 즐겨 듣던 음악, 익숙한 향, 사랑하던 대상을 통해 그녀가 잃어버린 희망을 돌려놓고자 하고, 무의식 너머에 갇혀있던 안나는 점점 의식으로 손을 뻗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래도 아직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녀를 잠에서 깨우는 것이 감옥 문을 잠그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치료하고 싶은 것이지 벌을 주려는 게 아니라는 맹세를 배신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
나는 침대 옆에 서서 안나를 내려다보며 간병인에게서 걸려왔던 전화를 다시 떠올렸다.
그 말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환자가 방금 눈을 떴습니다.”(243p)
그러나 안나의 상태가 호전될수록 드러나는 그녀의 과거는 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었다. 나아가 4년 전의 사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엮여있던 자신과 안나의 관계를 감각하면서 사건은 기이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마침내 잠들어 있던 자와 깨우려던 자의 위치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안나를 잠에서 깨우면 모든 전말이 밝혀지리라는 기대는 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 무너지고, 그제야 독자들은 눈꺼풀 아래 있던 안나의 눈동자에 더 깊은 비밀이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나아가 안나와 벤, 환자와 의사, 피의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계를 일제히 무너뜨리면서 이 책은 ‘심리 스릴러’라는 단어에 담기지 않는 또 하나의 장르적 지점을 개척해 낸다. 잠 깨어있던 독자를 잔혹한 악몽 한가운데로 이끄는 소설, 《안나 O》를 통해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무너져 내리는 진실을 확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