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정신과 약물 치료의 경험, 약물 부작용, 충동성, 감정의 무력화, 사회적 편견 등도 피하지 않는다. 차분하게, 그러나 직면하는 언어로 말한다.
“약이 만든 파장은 내 성격과 몸과 관계와 기억까지 바꿔놓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비난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다. ‘요즘 어떤 약 드세요?’라는 질문은 없었다.”
이 문장 뒤엔 절절한 외침이 숨어 있다. 자기 연민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의 언어다. 타인의 무지한 시선에 침묵하지 않고 그 침묵을 글로 변환하여 공감의 공간으로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이 책은 “누군가의 회복이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내게 말을 걸어올 줄은 몰랐다”는 한 문장처럼, 마음의 더 깊은 곳에 닿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어느 날 메모지에 쓴 ‘약에 대해 알아보기’, ‘커피 한 잔 마시기’ 같은 일상적인 다짐조차도 눈물로 번져 나오는 장면에서는, 가장 작은 것들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란 사실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이 책의 감동은 바로 거기에 있다.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결말 대신,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쌓여 다시 ‘살아가는 감각’을 되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셀레나 고메즈나 브레네 브라운의 말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고백을 시대적 맥락 속에 정교하게 연결해낸다. 디지털 중독, 보여지는 존재에 대한 강박, 사회적 우울을 아우르며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고통으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처 위에 꽃을 심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작가의 이 말은 단지 문장의 수사가 아니라, 희망이며 책 전체를 꿰는 정서다.
“나는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았지만, 그 상처 위에 쓴 문장들은 더는 나를 찢지 않는다.”
이 문장이야말로 회복의 언어, 치유의 미학이다.
나는 이 책을 우울이라는 이름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모든 이에게 건네고 싶다. 감정이 마비된 채,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하고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고통이 타인에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외로움 속에 머무는 이들에게 말이다. 이 책은 말없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너는 아직 여기 있어”라고 말이다.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한 인간의 회복 서사가 독자의 손을 잡는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위로의 방식이며, 가장 아름다운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