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키는 첫걸음, 정의로운 과세
이 책은 “초부유층에게 공정하게 과세하는 것이 기후정의 실현의 윈-윈 전략”이라고 단언한다. 정의감이나 윤리적 책임을 넘어 현실적 대안으로서 세금의 역할을 재조명한다. 중산층이나 서민을 압박하는 증세가 아니라, 상위 0.1%의 자산에 조금만 과세해도 에너지 전환과 사회 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정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크다. 이 책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부자에게 과세하라!’와 같은 단순 명쾌한 문제의식에 집중하는 점이다. 물론 부자 과세 하나만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다 풀긴 어렵다. 그러나 일단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현실을 개선하면서 기후위기에도 대응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제안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자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을 위해 각종 기술적·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말 것을 주문한다. 지구를 위한, 인류를 위한 공동의 책임감으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둘째, 흔히 ‘부자 과세’를 얘기하면 사람들은 부자들의 조세 저항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 각국 백만장자나 슈퍼부자의 상속자들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려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실은 부자들도 자신이 누리는 부가 온 사회(노동, 자연)의 토대로부터 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날로 양극화하는 현실에서 정부의 ‘조세정의’를 통해 불평등이 완화할수록 사회적 긴장과 불만 또한 줄어들 것이다. 그러니 양심 있는 부자들은 세금을 ‘기꺼이’ 더 내려고 한다. 흥미롭게도 바로 이 책 서문에서 백만장자 상속녀 마를렌 엥겔호른은 “부는 권력을 의미하고 이 권력은 민주적으로 분배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2023년 9월엔 백만장자, 경제학자, 정치가 등 300여 명이 G20에 공개서한을 보내 “전 세계 선도적 경제학자들이 부유세 과세 방안을 다각적으로 제안했다”고 밝히며 300여 부자들 “모두 부유세 도입을 찬성”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 남은 것은 이런 제안을 정책으로 실현하겠다는 정치적 결단뿐”이라고 하면서 정치가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셋째, 저자들은 단순히 ‘부자 과세’ 하나만 주장하지 않는다. 공정한 조세정책 외에 지속가능한 국가 채무, 유연한 통화정책 등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저자들은 기후위기와 밀접하게 연관된 식량 생산, 에너지 소비, 국제 이주, 생활 안전 등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고 적극 제안한다. 특히 과거와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넘어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발상을 검토해야 한다고 하면서 ‘총체적 변화’의 필요성을 암시한다.
이 책은 단순히 ‘세금’ 이야기를 넘어, 불평등을 줄이고 기후위기를 완화하며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어 ‘국가의 역할’과 ‘정치의 책임’을 되묻는다.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책, 지금 바로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