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로 길을 묻다 - 삶을 맛보는 순례자의 기록
이 책은 단순한 음식 이야기가 아니다. 박승흡 이사장은 ‘메밀’이라는 작고 소박한 곡물을 통해 사람과 지역, 계절과 역사, 그리고 우리 삶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메밀밭을 지나며 만난 냉면과 막국수 한 그릇이, 그저 식도락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고, 한 고장의 전통이며, 이 땅의 고요한 시간을 담고 있다는 것을 그는 정성스레 보여준다.‘메밀 순례단’을 이끌고 전국 곳곳의 메밀집을 찾아다니며 그가 만난 것은 음식 그 이상이다. 어느 때는 평생 한 가지 국수를 뽑아내며 살아온 장인의 땀을 만났고, 어떤 곳에서는 폐허가 된 마을을 메밀 한 그루로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공동체의 염원을 들었다. 때로는 역사 속에서 잊힌 토종 메밀의 씨앗이 되어, 때로는 냉면집의 작은 간판 불빛이 되어, 그는 전국의 골목을 걸었다.글은 소박하지만 담긴 이야기는 묵직하다. 메밀의 영양성분이나 조리법은 물론, 각지의 메밀 음식 문화와 그 속에 깃든 사람들의 사연까지 그려낸 이 책은 ‘먹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는 이야기’다.메밀면이 틀에서 한 가닥 한 가닥 뽑히듯, 그의 글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어떤 글에서는 웃음이 나고, 어떤 장에서는 묘하게 먹먹해진다. 결국 이 책은 음식 여행기를 가장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오마주다.메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향기로운 안내서가 될 것이고, 메밀을 잘 몰랐던 이에게는 ‘왜 메밀인가’를 묻는 철학서가 될 것이다. 박승흡 이사장이 걸어온 이 길 위에서, 우리도 어쩌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지 모른다. 메밀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 이야기로 끝나는 이 책은 그런 따뜻한 힘을 가진 귀한 기록이다.
ㆍ글_송경용(성공회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