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독자 리뷰 ★★★★★
- 복선과 반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리 유키코표 소설!
- ‘결국 진실은 뭐야?’라는 질문에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 작가의 의도에 완전히 말려든 느낌. 멋지게 속았다!
『언덕 위의 빨간 지붕』은, 몰래카메라를 들이대듯 인간 내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 살인을 촉발시키는 직접적 동인, 돈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은밀한 욕망, 피의 형태와 색깔과 냄새와 촉감, ‘고결함’이나 ‘아름다움’이 배제된 본능과 충동에 지배되는 섹슈얼리티, 질투와 시기, 기만과 환멸, 불안과 두려움, 선악과 미추의 기준에 대한 근본적 질문 제기, 불공정과 불평등, 소외된 자의 쌓인 울분과 그에 비례하여 쌓이는 비현실적 환상 등 일반적으로 기피되고 무시되어온 인간 심리의 어두운 심해층을 가차 없이 파고 들어가는 이야미스의 향연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점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점층적으로 드러나는 진실들, 그 진실을 혼란스럽게 휘젓는 또 다른 진실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전들은 인간 내면의 깊고 그늘진 구석구석에 묻혀 있는 결정적인, 때로는 파괴적인 힘을 들여다보게 한다. 설사, 기분 나빠질 정도로 불쾌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삶의 일부이며 세상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환기한다는 점이 이야미스가 이 시대에 읽히는 의의라 할 것이다.
추악한 일에서 눈 돌린다고 추악한 일이 사라지거나 해결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걸 직시함으로써 뭔가를 깨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고개를 젖혀야 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의 빨간 지붕’은 누구의 가슴속에나 있는 법이니까._‘옮긴이의 말’에서
‘원고에서 좀 더 질척질척한 피 냄새가 풍겨야지.
그렇게 고상해서는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없어.
빈집털이처럼 남의 내면에 성큼성큼 들어가서
뭔가 좋은 소재가 없는지 닥치는 대로 뒤지는 게 우리 일이야.’
아무 잘못도 없고 인격자로 평판이 높았던 의사 부부가 자택 근처 맨션 건설 현장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됐다. 온몸을 난도질당한 뒤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그 통에 담가진 것. 수사 결과 한 핏줄인 딸 아오타 사야코와 그 연인 오부치 히데유키가 범인이었고 법원은 아오타 사야코에게 무기징역을, 오부치 히데유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18년 뒤 한 주간지에 이 일명 ‘분쿄구 부모 강도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다. 신인문학상 수상 뒤 이렇다 할 작품을 못 쓰고 있던 한 젊은 작가가 이 소설 기획을 대형 출판사인 도도로키쇼보 문예부 편집자 하시모토에게 들고 온 것.
그러나 글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도도로키쇼보 출판사의 데스크에 의해 정해지고, 힘없는 편집자는 그보다 훨씬 더 힘없는 작가에게 집필을 위한 인터뷰 취재를 지시하는 동시에 데스크에게서 하달받은 집필 방향을 작가에게 강요한다. 젊은 작가는 속으로 애써 울분을 진정시키며 이 서열 구조에 동참하여 글을 써나간다. 다시 쓰기와 고쳐 쓰기를 몸이 상하도록 반복하면서, 이 전대미문의 살인자들 주변 인물을 하나하나 인터뷰하는 와중에 오래도록 숨겨져 있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사건 기록을 위해 재판을 참관했던 법정 화가 레이코는 아오타 사야코가 주도해 일으킨 사건이라고 단언하며 자신이 오부치 히데유키의 사형이 확정되기 전 그와 옥중 결혼했다고 밝힌다. 오부치 히데유키가 고등학생 때부터 일하던 이벤트 회사 사장은 그가 소행이 안 좋긴 헀지만 그렇게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진 않았을 것 같다며 아오타 사야코가 그의 마음에 들려고 필사적이었다는 것을 털어놓는다, 사건을 파고들수록 점점 더 혼란에 빠져드는 작가에게 편집자는 말한다.
“독자의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수수께끼’가 부족해. 그야 그렇겠지? 소설의 모티브인 ‘분쿄구 부모 강도 살인 사건’은 대중들이 보기에 이미 해결된 사건이니까. 아무리 잔인한 사건이라도 ‘해결’되면 대중의 흥미는 식는 법이야.” (69-70쪽)
독자가 감정 이입할 시점을 어떻게 설정하고, 독자가 가슴 졸일 수수께끼를 어느 지점에서 만들어야 할까? 오부치 히데유키의 전 애인이자 도도로키쇼보의 편집자였던 이치카와 세이코는 오부치 히데유키가 천성적으로 여자를 후리는 데 타고났다며 그가 아오타 사야코를 어떻게 만나기 시작했는지 격한 흥분에 휩싸여 얘기한다. 또한 사건 현장인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집 이웃 오가타는 사야코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 사건 당일 밤에 그 집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설명하다가, 얼마 전 교도소에서 사야코에 관한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고 덧붙이는데…….
제삼자들의 말로만 전해 듣던 사야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누구를 주범으로 설정하여 소설을 이끌어갈 것인가? 대체 누가 진짜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작가, 편집자, 증인, 피의자 모두는 각자 원하는 바를 달성할 것인가? 복선과 반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가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잠시 멈춰야 할지 모른다.
철저히 투명 인간으로 살아오길 30여 년. 가족과 레이코 사이에 생긴 골은 회복 불가능할 만큼 깊어졌고, 블랙홀 같은 절망만 매일 생겨났다. […] 계속 투명 인간으로 지내다 보면 언젠가 진짜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활해서 ‘레이코, 미안해! 외로웠지’ 하고 끌어안아주지 않을까.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30년 넘게 지나서야 그런 날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298-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