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장르가 된, 우리 시대 음유시인 정태춘의
선율도 화성도 벗어버린 벌거벗은 텍스트들
『시인의 마을』(1978)이란 데뷔 앨범 제목처럼 정태춘은 가수 이전에 이미 시인(詩人)이었다. 그런 그가 12번째 앨범 『집중호우 사이』를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프로젝트’를 표방했다. 그의 이번 앨범을 두고 문학평론가 오민석은 “지금까지 한국 대중가요가 이룩한 최고의 문학적 성취”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처럼 이번 앨범은 그의 노래 인생을 관통해온 ‘문학 프로젝트’의 연장선이자 한국 문학에 진 빚을 갚고자 한 그의 오랜 바람을 실현한 결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문학 프로젝트 중 하나로 출간한 노래시집 『집중호우 사이』 역시 그가 노래를 멈추고 가죽공예, 한시, 붓글, 사진 작업 등으로 확장해 온 지난 20여 년의 기록을 한 권에 담아낸 특별한 성찰의 산물이다. 노랫말, 한시, 산문, 사진, 이야기 시, 메모 등 장르를 넘나드는 글들이 ‘노래 시’라는 이름으로 엮인 이 책은 단순한 시집이 아니라,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라는 그만의 고유한 창작 방식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사와 문학사에 동시에 발을 딛는 새로운 텍스트들로 다가온다.
정태춘은 이번 책에서 자연과 삶, 존재의 무상함을 시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고릴라 다이어리’라는 이야기 시를 통해 문명 비판과 반산업주의, 그리고 대안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까지 담아낸다. 또한 이를 통해 그는 동아시아의 자연 시인 도연명, 평화주의자 틱낫한 등과 같은 맥락 속에서 ‘수양적 예술’을 실천하는 사유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고 ‘동아시아적 노래 시인’으로서의 독자적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책에는 그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캡션 없이 삽입되어 붓글씨와 함께 무심한 듯 진솔한 시적 정조를 더한다. 덧붙여, 그의 시편 곳곳에는 동양의 풍자시 정신, 불교의 무상관, 동아시아 예술가들의 사유 전통이 깊게 배어 있어 독자들에게 시적 아름다움과 철학적 성찰을 동시에 선사한다. 자서(自序)를 통해, “돌아보면 저 20여 년이란 세월도 별일 없이 흘러갔다. 그 시간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노래와 시로 풀어놓는다.”라고 말한 정태춘의 이번 노래시집 『집중호우 사이』는 동명의 정규 12집 음반과 함께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이자 사유와 예술, 삶의 통합을 지향하는 그의 예술 철학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문학적 성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