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무엇을 잃었는지가 아니라
남은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였다
인스타툰과 전시 활동으로 감동과 위로를 전해온 왼손 작가 독고의 그림에세이 《삐뚤빼뚤, 그래도 전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여행 중 음주운전 피해 사고로 오른팔이 마비된 독고의 일상을 담은 이야기로, ‘오른손이 없으면 왼손으로 그리면 되지’라는 결심에서 출발해, 서투르지만 성실하게, 한 걸음씩 다시 걸어 나간 치유와 회복의 여정을 그린다.
“처음엔 왼손으로 글씨 쓰기와 젓가락질 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다음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처음에는 펜을 쥐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짧은 선 하나를 긋는 데도 한참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비극이 닥쳐올 때
여행을 좋아해 하늘을 누비는 승무원이 되었던 독고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춘 동안 여행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떠난다. 그러나 3일째 되던 날, 음주운전자가 낸 오토바이 사고로 정신을 잃고 만다.
“오른손을 쓰지 못할 겁니다.”
그림 작가로서 오른팔을 잃는다는 건 삶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지는 일이었다. 직업도, 미래도, 자신이라는 존재의 일부분도 사라진 듯했다. 사고 이후 수차례의 수술과 긴 회복의 시간, 그리고 이어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독고는 삶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절망의 끝에서 독고는 한 가지를 붙잡았다.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까?’ 그 질문은 곧, 삶을 회복하는 여정의 첫걸음이 되었다.
약점이 강점이 되는 순간
좌절의 바닥에서 독고는 결심한다. ‘나에게 잘해주고 싶어.’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왼손으로 그린 그림과 회복의 기록을 인스타툰으로 연재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이 그의 이야기에 감동했고, ‘위로 받았다,’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독고는 자신이 남긴 선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 보며 조금씩 삶을 회복해 나갔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쨌든 조금은 불편하지만 특별해지긴 한 것 같아.”
한때는 ‘오른팔을 못 쓰는데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독고는 회사에 취업하고, 일러스트 페어에 참여하거나 전시를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은 손’이라 여겼던 왼손이, 지금은 독고의 가장 강력한 시그니처가 되었다.
나의 결핍은 결핍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핍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핍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결핍이 있다. 독고의 이야기는 결핍이 반드시 극복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강점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전환의 힘은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부터 나온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괴로움은 내가 능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무력해진다. 평범하지 ‘못한’ 삶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순간, 마법은 일어난다.”
《삐뚤빼뚤, 그래도 전진》은 불의의 사고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 결핍으로 인해 자신을 원망하던 사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따뜻한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상실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누군가의 ‘불완전함’이 또 다른 이의 ‘희망’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도 삐뚤빼뚤하고 서툴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음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이 용기야말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