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슨이 있기에 홈스가 있다!”
슬럼프를 건너온 소설, ‘쓰는 사람’의 이야기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써온 작가이자 증언자인 왓슨에게 ‘주인공’ 셜록의 침묵은 곧 글감의 상실을 의미한다.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왓슨은 다른 홈스를 상상한다. ‘미지의 세계, 이를테면 런던에 사는 홈스는 어떨까?’ 한편, 런던의 왓슨 역시 교토의 홈스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에셔의 판화처럼 서로를 그리는 두 손이 교차하는 순간, 소설의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시공간이 바뀌어도 홈스는 여전히 홈스일까? 이야깃거리를 잃어버린 왓슨은 홈스담(談)을 재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슬럼프에 빠진 홈스의 나날을 과연 모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존재하지 않는 시대와 장소, 교차된 관계, 현실과 이세계(異世界), 작가와 독자, 셜록과 왓슨. 작가는 이 균열을 열어젖히고 이야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차원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다.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셜록 홈스의 개선』을 써온 것이었다.
_본문에서
유쾌한 청춘 판타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푸근한 가족 이야기 『유정천 가족』, 아라비안 나이트의 미궁을 탐험한 『열대』에 이르기까지, 모리미 도미히코는 교토를 배경으로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교토의 천재 작가’로 불리며 독창적인 상상력과 고풍스러운 문체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그였지만, 창작의 슬럼프만큼은 피해가지 못했다.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던” 고통의 시간과 휴식기를 거쳐 7년여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 바로 2024년 발표된 『셜록 홈스의 개선』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바스커빌 가의 개』를 읽은 이후 셜록 홈스 시리즈의 열렬한 애독자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홈스를 소재로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는, 그리고 그 소설이 쓰지 못하던 자신을 다시 쓰는 자리로 이끌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다. “왓슨이 있기에 셜록이 있다”는 외침은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 자신과 이야기의 왕국을 지키는 독자에게 전하는 조용하고 깊은 격려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