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시를 관통하는 소비 패턴의 변화와
새로운 자본의 흐름을 읽어라”
불황의 늪에 빠진 리테일 비즈니스, 오프라인에서 돌파구를 찾다
Z세대가 선호하는 브랜드 애플은 왜 성수가 아닌 명동에 자리를 잡았을까? 럭셔리의 대명사 디올은 백화점을 떠나 왜 성수에 팝업을 열었을까? 거리의 랜드마크가 되는 브랜드가 무엇 때문에 특정 상권을 선택하고, 상권이 가진 매력이 어떻게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올리는지를 살펴보면 리테일 시장을 이해하기 쉬워진다. 리테일 부동산 디렉터로서 작게는 브랜드를 건물에 입점시키고,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리빌딩해 죽어 가는 빌딩을 살리고, 크게는 디타워 같은 대형 복합 시설을 기획하는 저자는 상업용 부동산을 재료 삼아 상권의 역사, 리테일의 변천사, 트렌드, 브랜드 전략, 소비 심리, 기술 혁신 등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서울의 6대 하이스트리트는 팬데믹 이후에 달라진 오프라인 리테일의 현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백화점의 시대에서 쇼핑센터의 시대로, 전자상거래의 시대에서 온ㆍ오프라인 융합의 시대로 바뀐 지금, 하이스트리트도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 제일의 하이스트리트인 명동, 홍대, 강남, 성수, 한남, 도산은 상황에 혁신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저마다의 고유한 표정을 유지한다. 노점과 외국인 관광객, 글로벌 브랜드 플래그십이 만들어 가는 명동 거리의 표정, 팝업과 Z세대, 오래된 공장 지대의 분위기로 개성 넘치는 성수의 표정, 고급문화와 K패션이 혼재된 세련된 한남의 표정 등 상권마다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곳들을 하이스트리트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어 주는 속성이 있다. 바로 핵심 산업, 정통성과 화제성, 독자성과 파괴성, 회복탄력성, 배후 세력, 문화 인프라, 접근성이다.
대한민국 리테일 부동산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최적의 입지, 최상의 공간, 최고의 전략을 위한 리테일 설계도
자자는 아홉 가지 속성을 기준으로 여섯 상권을 메가 하이스트리트와 네오 하이스트리트로 구분한다. 리테일의 최정점에 있는 애플스토어가 위치한 전통 상권 명동, 홍대, 강남을 메가 하이스트리트(Mega High Street)로, 2030 세대의 사랑을 받으며 화제성을 유지하는 신흥 상권 성수, 한남, 도산을 네오 하이스트리트(Neo High Street)로 나눈다.
전통 상권과 신흥 상권은 여러 방면에서 대조를 이룬다. 같은 하이스트리트라도 강남과 명동의 빌딩이 높고 대규모 면적을 지닌 데 반해, 성수나 도산의 건물은 부피를 키우는 것보다 특색 있는 외관을 자랑한다. 이는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전략 밸류애드와 맞닿아 있다. 사람을 끌어모으는 자원, 앵커도 상이하다. 명동에서는 글로벌 브랜드 플래그십이, 한남에서는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의 플래그십이 앵커가 된다. 오프라인 리테일이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브랜드의 얼굴이자 광고판이 된 파사드도 중요해졌다. 명동과 강남에서는 루이비통과 구찌처럼 브랜드의 권위, 경제적 역량, 프리미엄 가치를 드러내는 파사드를, 성수나 한남에서는 탬버린즈처럼 브랜드의 독창성과 개성을 강조하는 파사드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보여 준다. 상권의 경쟁력은 사회문화적인 자본인 레이어에서 비롯된다. 명동과 강남 일대의 부유한 소비층과 성수에 방문하는 청년층의 소비 패턴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소비자층에 따라 메가 하이스트리트에는 백화점과 명품 매장이, 네오 하이스트리트에는 유기농 매장, 독립 서점 등이 들어선다. 높은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는 메가 하이스트리트에 플래그십을 열어 브랜드 위상을 높이는 반면, 신생 브랜드는 도산과 같은 네오 하이스트리트에 플래그십을 열어 독특한 정체성을 알리고 화제성을 얻으려 한다.
사람을 모으고, 브랜드를 살리고,
도시를 바꾸는 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렇듯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 메가와 네오, 둘 중 어느 상권이 더 발달했다고 볼 수는 없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 세력이 작았던 성수, 한남, 도산이 지금은 메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도약할 수 있었던 까닭은 아이러니하게도 팬데믹 때문이었다. 팬데믹은 단순히 온라인의 발전을 앞당긴 것이 아니라 소비자 행동, 유통 채널, 상권 가치의 지형을 다시 그린 사건이다. 상권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한류다. 한류가 드라마나 K팝에 편중되지 않고 뷰티, 패션, 클리닉으로 확장되면서 상권 또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욕구를 반영해 재편되고 있다. 이렇듯 상권은 홀로 성장하지도, 쇠퇴하지도 않는다. 시대에 따라, 주변 환경에 따라, 문화에 따라 정체성을 구축한다.
번화가의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면 점포와 방문객 외에 수많은 요소가 거리 풍경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크고 작은 빌딩들, 눈길을 사로잡은 파사드, 길거리 음식, 버스킹 등 오래되었거나 새롭게 생긴 모든 것들이 하이스트리트를 이룬다. 그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투자자와 운용사, 디벨로퍼 등도 거리의 뒤편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역 중 하나다. 이 모든 요소가 연결되어 있는 하이스트리트는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며 변신을 거듭한다. 사람이 모이고 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풀어놓는 저자의 이야기는 결국 상권 생태계 분석서나 다름없다. 이 책은 급격히 변화하는 리테일 시장으로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부동산의 진화, 소비자 경험의 변화, 브랜드의 공간 전략, 경기 침체 속에서의 생존법 등 뛰어난 분석과 통찰을 바탕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