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 대한 인식의 변천
과거 농경사회에서 아이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었다. 다섯 명, 여섯 명의 자녀를 두어도 절반 정도만이 살아남는 시대였다. 따라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명제는 희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으며, 노동력 확보를 위한 필수 요소였다. 아들 다섯이면 밥 굶을 일이 없다는 말은 농사일에 아이들이 곧 ‘일손’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대표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여전히 아이가 첫돌을 맞이하면 성대하게 ‘돌잔치’를 여는 문화적 관습을 이어가고 있다. ‘돌’은 단순한 생일이 아니라, 살아남았음을 축하하는 의식의 흔적이기도 하다.
출산에 대한 정부의 메시지 역시 시대에 따라 극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1950년대에는 “3남 2녀로 5명은 낳아야죠”라는 다자녀 장려 구호가 있었던 반면,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인구 억제 슬로건이 전국에 퍼졌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와 같은 문구로 전환되었다. 이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아이에 대한 인식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아이의 수는 곧 사회의 구조를 바꾸어왔다. 1970~80년대에는 초등학교가 과밀화되어 오전반, 오후반을 운영했으며, 유치원 입소 경쟁이 치열하고 교실이 부족해 신축과 증축이 반복되었다. 반면, 오늘날에는 학급 수가 줄고 소규모 학급 운영이 기본이 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 통폐합이 일상화되었다. 아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출산율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인프라, 교육정책, 지역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이 된 것이다.
엄마라는 존재도 변해왔다
‘엄마’의 의미 또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과거에는 집사람, 색시, 마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웠다. 이는 가부장적 사회질서 속에서 여성을 위치시키는 표현들이었다. 오늘날에는 과장님, 대표님 등 직책 중심의 호칭이나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식의 수평적 호칭 문화가 일반화되었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했음을 상징하는 언어적 지표다. 또한 과거의 여성 교육은 가사와 재봉, 타자 등에 한정되었지만, 오늘날 여학생들은 물리학, 컴퓨터공학 수업을 자유롭게 수강하고 대학 진학률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을 앞질렀다.
‘엄마’라는 존재 역시 더 이상 출산과 양육만을 담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이자 교육과 경제활동의 주체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단순히 출산율 저하의 ‘이유’가 아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회의 진화이기도 하다.
저출산, 한국만의 문제일까
흔히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라고 말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사실 세계적으로도 출산율 하락은 보편적인 흐름이다. 저자는 “불임의 초승달 지대(Infertile Crescent)”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이는 스페인에서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광범위한 지역이 대체출산율 이하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 지역을 도보로 걸으면 한 번도 출산율이 ‘대체출산율(여성당 자녀 2.2명)’을 넘는 땅을 밟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초 싱가포르 여성들은 평균 5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다. 그러나 불과 20년 뒤, 그 수치는 2명 미만으로 급감했다. 스페인 역시 1980년대 초부터 여성 1인당 자녀 수가 2명 이하로 내려갔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출산율이 1명에 가까워졌다. 독일은 수십 년간 출산율 1.5명 이하를 유지해왔고, 이민 유입이 없었다면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이미 많은 변화가 우리 삶 속에 스며들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의 조영태 교수는 저서 『인구는 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흥미로운 예를 제시한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발표된 1990년대 초,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은 27세였다. 즉, 사회의 정중앙에 있는 사람의 나이가 서른 언저리였고, 서른은 곧 어른을 뜻하는 나이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위연령은 45세를 넘어섰다. 다시 말해, 서른이 되어도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어린 축’에 속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나이 문제를 넘어서, 세대 구조와 사회 인식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다.
혁명이나 내전도 인구 분포의 산물
전쟁이나 혁명도 사회의 인구 구조가 젊을수록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1917년 혁명 직전의 러시아는 젊은이들의 나라였다. 혁명 지도자 레닌은 50세가 안 되었고, 스탈린과 트로츠키 모두 40세도 채 되지 않았으며, 혁명 세력의 요직 상당 부분을 20대가 차지했다.
서구 사회에서는 1960년대 후반, 1차 베이비붐 세대가 청년기로 접어들었을 때 전후 불안이 가장 심했다. 시민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대학가의 격렬한 시위들이 미국을 비롯하여 전세계적 현상이었다. 우리나라의 4.19도 1961년이고, 프랑스의 68혁명은 1968년이다.
스튜던트 파워니 플라워 파워니 하는 용어들을 만들어내며 온 세계가 들끓어 오르던 당시 미국인의 중위연령은 30세가 채 되지 않았다. 지금 미국의 중위 연령은 40세에 가까워졌다. 여전히 대학 캠퍼스가 반대 의견의 중심지이긴 해도, 예전처럼 폭력 시위는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문화대혁명은 파리와 버클리의 청년 혁명과 거의 같은 시기에 벌어졌고, 당시 중국의 인구 구조는 상당히 젊었다. 1960년대 들어 유아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중국의 중위연령이 20대 초반에서 10대 후반으로 내려갔다. 마오는 젊은 층을 공략해 당내 기성 세력을 약화시키고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 선생·교수는 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었으며, 관료와 공무원도 ‘혁명’이란 명분 아래 잔혹하게 공격받았다. 이는 중·장년층을 상징하는 ‘낡은 방식’을 파괴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중국인의 중위연령은 미국과 비슷한 30대 후반이고 꾸준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중이다. 앞으로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도, 또 한 번의 문화대혁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어떤 강대국이 우위를 점하든 지난 수십 년 동안 큰 분쟁이 거의 없었던 건, 주요 강대국들이 모두 고령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부 학자는 이를 ‘팍스 아메리카나 게리아트리카(Pax Americana Geriatrica)’라고 부른다.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이 던지는 메시지
『인구의 보이지 않는 손』은 이러한 복합적인 인구 문제를 단순한 위기의 서사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저출산을 포함한 인구 변화가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를 성찰하게 한다. 인구는 단지 숫자의 문제나 국가 정책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 가치관, 가족관계, 사회 구조 전반을 관통하는 거대한 힘이자,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인구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찾고, 앞으로의 미래를 보다 명확히 설계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지닌 절망의 어조 너머에,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과 인식의 지평을 여는 통찰이 바로 이 책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