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아무것도》에 수록된 단편들은 별거 아닌 기분에서 출발해 불투명한 틈새로 향한다. 등장인물들은 낯선 리듬에 휘말리거나, 무심한 현실이 애써 지나친 감정의 흔적들과 마주하고, 너무 오래 말하지 않아 잊힌 질문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 별거 아닌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별일은 없었던’ 하루에도, 그 안에 오래 머물던 이상한 기분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뇨, 아무것도”라는 말끝에 머뭇대다 놓친 숨처럼.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다가올 일상에서 작가의 문장들은 독자 스스로 감지하게 되는 기척이 된다.
무엇보다 이번 소설집의 가장 큰 특징은 ‘일상의 판타지’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어긋나게 하는 독특한 서사에 있다. 작가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기묘하고 수상한 기척을 포착해낸다. 표제작 〈아뇨, 아무것도〉의 평범한 주인공이 택시 안에서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고백하는 신입사원을 만나는 것처럼, 15편의 이야기 곳곳에서는 평범해 보이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진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가 포착하는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적 변화들이다. 〈테니스를 쳐야 하는 이유〉의 세계 랭킹 1위 테니스선수가 갑자기 테니스를 치기 싫어지거나, 〈물과 숨〉의 주인공이 수영을 배우며 점차 물에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우리 내면의 갑작스러운 변화와 욕망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48시 편의점〉처럼 농담처럼 보이는 상황을 다루면서도 독자를 완전히 몰입시키는 것은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이다. 24시간 혼자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장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 불가해한 현상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잘 짜인 이야기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떨림을 느낀다.
작가는 이번 작품집에서 전작들을 이으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한층 더 자유로워진 상상력을 보여준다. 〈여기는 게이바가 아닙니다〉처럼 유머러스한 작품부터 〈후미등」 같은 스릴러적 긴장감이 넘치는 작품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인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작가 특유의 기묘하면서도 수상하고 그러면서도 귀여운 시선이 일관되게 관통한다.
〈마트료시카〉는 이번 소설집의 백미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자신 역시 누군가의 소설 속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메타픽션적 상상을 펼쳐내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창작의 본질과 현실과 허구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유쾌하게 풀어낸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글들은 대부분 그냥 썼다. 청탁 없이 마감 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라고 밝히며, 순수한 창작 욕구에서 출발한 작품들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자유로운 창작의 마음이 만들어낸 15편의 이야기야말로 독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사유의 여지를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아뇨, 아무것도》는 일상의 틈새에서 발견하는 작은 균열들이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집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삶의 새로운 층위를 발견하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