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UI, 연극의 코러스
『게임 코러스』의 주장은 복잡하지 않다. 게임은 사용자 접속 장치(user interface), 즉 UI로 이루어져 있다. 이 UI는 “플레이어가 게임에 참여하고자 진입하는 통로인 동시에 플레이어의 참여를 유도하고 유혹하며 명령하는 장치”이다. 공교롭게도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게임의 UI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요소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시민 합창단, 즉 ‘코러스’(chorus)이다.”(14쪽)
코러스와의 유비를 통해, 『게임 코러스』는 UI의 강력한 역량을 규명한다. 마치 코러스가 애초 연극이 태동하던 고대 그리스 시기에는 연극의 부분을 넘어서 연극 그 자체였듯이, UI는 게임의 구조를 구성하는 부분일 뿐 아니라 곧 게임 그 자체이다. 또한, 마치 코러스가 연극 속 세계의 실재성을 믿고 관객을 그 실재하는 세계로 끌어들이듯이, UI는 게임 속 세계의 실재성을 믿고 플레이어를 그 실재하는 세계로 끌어들인다. 마지막으로, 마치 코러스가 관객 자신과 현실 사이의 구분을 뒤흔들고 현실 너머의 근원적 ‘자연’을 드러내는 연극 경험을 제공하듯이, UI는 플레이어가 더 이상 현실의 현실성을 믿지 못하게끔 하는, 그리고 자아의 소멸을 겪게끔 하는 게임플레이를 가능케 한다. 이러한 연극과 게임의 근원 현상을 『게임 코러스』는 (니체의 용어를 빌려) ‘디오니소스적 도취’라고 부른다.
UI는 어떻게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제공하는가
『게임 코러스』는 이러한 간명한 주장을 세밀하게 뒷받침한다. 먼저, UI는 ‘어떻게’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경험을 제공할까? 간혹 UI는 자신을 아무 근거 없이 관성적으로 믿어 버리는 플레이어의 신뢰를 박살 낸다. 바로 이러한 “배신”을 통해 UI는 플레이어가 의존하는 경험적 현실의 안전함과 견고함을 깨부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게임 코러스』가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게임이 바로 「언더테일」(Undertale)이다.(2장 ‘배신하는 UI’)
한편, UI는 ‘어떤 조건에서’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경험을 제공하는 데 자칫 실패하는가? 바로 UI가 메뉴 디자인과 플레이 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을 해치고 플레이어의 몰입을 깨뜨릴 때이다. 『게임 코러스』의 3장 ‘UI의 실패 조건’은 「호라이즌 제로 던」(Horizon Zero Dawn)의 텅 빈 시작 화면, 「네크로문다: 하이어드 건」(Necromunda: Hired Gun)의 인게임 메뉴 시스템 등과 같이 수많은 사례와 반례를 들어 UI가 실패할 경우의 수를 구체화한다.
마지막으로, UI가 가진 힘은 어느 정도이고 또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UI가 플레이어에게 미칠 수 있는 힘은 때로 전제적일 만큼 강력하다. 가령 체력 바, WASD 키 등의 UI는 “플레이어가 퀘스트나 이야기 등을 떠올리기도 이전에 거의 전의식적(前意識的)인 단계에서 끊임없이 명령을” 내린다.(94쪽) 그리고 이러한 강력한 지배를 통해 UI가-즉, 게임이-궁극적으로 설파하는 바는, 우리 삶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쾌”라는 메시지이다.(4장 ‘UI의 명령과 목표’)
회의와 염세의 게임 이론
영이는 ‘날것’을 쓴다. 그가 폭력, 죽음, 고통 같은 적나라한 대상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게임과 예술을 바라볼 때 그것들의 무용함과 황량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게임 코러스』의 부록으로 수록된 「게임과 행위 원리: 놀이와 협박 」의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묻는다. “애초에 예술 현상이 무슨 외부적 효용을 위해 벌어진단 말인가?”(111쪽)
영이에 따르면, 무언가를 ‘위해서’ 행위해야 한다는 합목적성은 허위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허위적인 믿음을 무너뜨린다는 점에 게임이라는 장르의 ‘디오니소스적 본질’이 있다. 『게임 코러스』는 이러한 회의(懷疑)와 염세(厭世)의 게임 이론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거기에 담긴 생각은 당장은 수긍하기 어려울지라도 완전히 떨쳐 버릴 수도 없을 만큼 저돌적이고 근본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