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잘 안다고 오해하고
작은 오해만으로도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
공현진의 소설에서 원가족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닌 개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서로 믿음이나 신뢰를 쌓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오직 종교로써 결속되기를 꾀하는 가족공동체는 개인을 소외시키고 집요하고 잔인하게 옭아맨다. 집을 나간 지 5년 만에 돌아온 언니가 대뜸 결혼을 선언하자 엄마가 가장 먼저 “믿는 사람이지?”(「돌아가는 마음」, p. 78)라고 묻거나 딸을 잃은 초희 이모가 조카인 ‘나’의 모든 것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신앙생활에 집착하는(「권능」) 모습은 매일 신께 기도하지만 서로 소통은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가족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언니와 이모가 처음부터 가족으로부터 구제 불능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언니’는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와 형제들의 자랑이었고, ‘초희 이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화자를 악몽에서 꺼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각각의 화자는 한 몸과도 같았던 혈육이 원가족 안으로 안착하길 바라면서도 그들이 결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불안해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우리는 숲」에서 가족 서사의 큰 줄기는 앞서 두 작품과 연결되지만 원가족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부모의 자살로 단둘만 남게 된 자매에게는 이들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 이웃들은 부모의 죽음을 쉬쉬하고 해남에서부터 자매를 찾아오는 이모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춘다. 동생 ‘미영’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말라가고 자매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물들에게 시달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어린 자매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오래도록 염원하던 만두 가게를 열게 된다. 이로써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훔쳤던 폴리 포켓도, 쓸데없는 감상에 젖게 만들던 알전구도 그리고 죽은 부모의 흔적도 모두 으깨어져 따뜻하고 부드럽게 빚어져 과거로 남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혈연으로 이뤄진 자매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어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묻는 공현진의 소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헛된 믿음이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로 끌어내리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에서 진정 중요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더 있는 힘껏 믿고, 의지하고 또 응원할 수 있는 마음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던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는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미더운 응원으로 다시 치유되기도 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에서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취직도 하지 않고, 남자답지 않고, 군대도 미루고, 채식을 해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도무지 없어서”(p. 100) 폭력을 일삼는다. 석주와 달리 고기를 먹고 여행사의 비정규직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나’는 스스로 만든 아마추어 밴드에서마저도 잘린 석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화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석주뿐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모든 업무가 멈춘 회사 앞에 서서 핑크색 조끼를 입고 시위를 하는 과장님이나 대학 기업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삭발 시위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화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p. 131)라는 석주의 무구한 물음에 석주의 모든 행보에 더는 이유를 덧붙일 필요 없이 온전히 응원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름을 짓기 직전」의 화자가 이해할 수 없는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응원했다면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은 잘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난 ‘선자 씨’와 ‘진아’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들이지만 함께 공부하고 생활을 나누며 서로를 순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돕는다. 각각 아버지와 남편을 부양해야 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을 살뜰하게 살피며 각자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친구가 된다. 한밤중 ‘진아’의 집에서 수도계량기가 동파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도 선자 씨이고, 선자 씨 혼자만 보호사 자격증에 붙었을 때도 ‘진아’는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기원할 만한 상황인가, 그런 처지인가” 하고 되물으면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선자 씨의 안녕”(p. 171)을 바라고 또 응원하며 더 밝은 내일로 나아간다.
마지막 수록작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는 인류의 마지막 순간과 유일하게 남은 ‘하나’라는 인물을 통해 인류의 멸망에 대해 그리면서도 인간 삶의 찬란하리만치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인류에 대해 그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끝을 알고도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세계의 멸망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이의 소멸에 무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달라진 세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소, 해설 「어차피의 세계에서」, p. 291)을 건네는 공현진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 자신 1인칭의 세계가 아닌 더 넓은 범주에서의 3인칭의 세계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거울 밖 세상에 자리하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공현진의 소설은 아직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물속에 깊이 가라앉는 순간까지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과 용기를 전하려 하는 신인 작가의 행보가 더욱 미덥게 느껴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