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가장 소중하고 좋은 것을 두고 지키는 일”
발견되고 확장되는 정원의 의미
정원과 글쓰기라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작업은 ‘가든 라이팅(garden writing)’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많은 작가들이 해온 일이다. 식물 재배법 같은 기술적인 글부터 역사와 이론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에세이, 최초의 낙원 정원이 묘사된 성경과 코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를 아우른다. “조금 과장하면 이 세상에 정원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는 것 같다.”(8쪽) 이렇게 인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원의 의미를, 저자는 오랫동안 예술에서 찾고자 했고 그중에서 문학에 가장 크게 집중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정원의 정의부터 짚는다. “집 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표준국어대사전), “식물, 토석, 시설물 등을 전시·배치하거나 재배·가꾸기 등을 통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공간”(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 등의 정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정원의 풍부한 의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저자는 우선 “울타리를 두른 땅에 소중하고 가장 좋은 것(채소와 과일, 꽃과 동물, 생계 수단 등)을 두어 지키는 데에서 정원이 시작되었다”고 한 프랑스 조경가 질 클레망(Gilles Clément)에 기대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수많은 정원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탐구하고 또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쓰면서 그 안에서 정원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한다. 이는 정원을 공부하며 늘 품어온 ‘왜 우리는 정원을 가꾸는가? 혹은 가꾸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26편의 글을 연결해보니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는 네 가지 범주로 ‘정원’을 구획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꽃 심고 나무 가꾸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수많은 가능한 세상 가운데 가장 좋은 세상은 권력이나 신분, 돈, 공허한 담론으로 만들 수 없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정원을 가꾸듯 차근차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세상이 더 이상 낙관적이지 않을 때에도 정원처럼 가꾸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_24쪽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사랑을 보존하는 정원
꽃과 나무, 인간이 더불어 자라다
1장 ‘치유의 정원’에서는 인간을 회복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정원의 가치를 살펴본다. 실제로 양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여러 이상 증세가 나타났는데, 단지 자연 속에서 햇빛을 쬐며 정원을 가꾸게 한 것만으로 훨씬 나아졌다는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다음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연구되면서 원예 치료, 즉 식물을 심고 가꾸고 흙을 만지는 일 속에서 다친 마음을 치유하려는 연구와 실무도 발달한다. 문학 작품에서도 정원이 이러한 회복의 차원에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정원에 관한 가장 유명한 어구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대표되는 《캉디드》, 정원을 가꾸며 어린 시절의 결핍을 비로소 이해하고 극복해나가는 성장 소설 《비밀의 정원》, 안온한 시골생활을 꿈꾸는 도시인의 로망을 그린 《부바르와 페퀴셰》, 감염병의 재앙 속에 잠시나마 정원이 유토피아가 되어주는 《데카메론》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농부의 영국 도보여행과 이야기》를 통해 뉴욕 센트럴파크를 만든 옴스테드를 소개하거나, 퇴근 후 돌변하여 자신만의 정원에서 ‘워라밸’을 찾는 캐릭터를 《위대한 유산》에서 재조명한 것도 흥미롭다.
2장 ‘사랑의 정원’은 좁은 의미의 성애부터 타인과 기억에 대한 그리움 등을 포괄하는 사랑을 다룬다. 완전하고 안온한 세계와 다다를 수 없는 연인을 동시에 은유하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관능을 넘어 미덕으로 나아가는 사랑의 과정에서 정원이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하는 《신엘로이즈》, 네 남녀의 어긋난 ‘케미’를 보여주는 무대로서 정원이 작용하는 《친화력》, 동시대와 이후 정원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힙네로토마키아 폴리필리》, 달콤한 순정만화 속 흩날리던 장미로 아로새겨진 《캔디 캔디》를 차례로 탐독한다. 사랑했던 이가 죽고 그가 남긴 세상을 ‘기억의 정원’ 속에 응축해낸 두 소설, 《그리움의 정원에서》와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비교해보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 지극한 사랑, 그리고 정원의 마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원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19세기 미국 동부의 조용한 사제관에 딸린 너른 정원, 풀숲과 조약돌이 깔린 작은 오솔길이 있고, 새들이 노래하고, 작은 숲과 연못이 있고, 갈대와 나룻배가 있고 (…) 달리아, 개양귀비, 서양지치, 스위트피가 자라는 정원.” _126쪽
정원을 부순 대가, 되돌리겠다는 약속
지구 정원사는 떠나지 않는다
3장 ‘욕망의 정원’에 소개되는 정원들에는 보다 치열하고 역동적인 인간사가 투영돼 있다. 19세기 파리 재개발에 얽힌 신흥 부자들의 산책길을 재현한 《쟁탈전》, 자신의 성에 인공 자연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길을 나설 때도 ‘여행용 자연’을 소지하는 왕자님 이야기 《감상주의의 승리》, 루이 14세의 공간 통제 욕망을 반영하는 안내서 《베르사유 정원을 보여주는 법》, 로마 제국의 확장과 번영, 지식과 힘을 보여주는 플리니우스의 《자연사》 등이 소개된다.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에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매료되었던 세월의 환영들”이 날아오르는 치열한 여름의 정원이, 《내일은 없다》에서는 유혹과 쾌락, 충동과 타락의 무대가 되는 ‘닫힌’ 정원이 나온다. 그렇다면 정원 자체에 ‘윤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다시 읽는 시선을 따라가보자. 아우슈비츠의 사택에, 피와 비명으로 지어졌으나 ‘저 혼자 안락한’ 정원이 있는데 이 정원을 설명할 새로운 언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4장 ‘생태의 정원’에는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를 맞이한 오늘날 인류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정원들이 나온다. 최초의 문학으로 주로 호명되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인류 최초의 환경파괴범’으로 다시 주목한다. 나 아닌 누군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땅에 돌려주는 정원사의 마음을 아름답게 노래한 《나무를 심은 사람》, 세상을 적시는 ‘비의 정령’을 깨우기 위한 여성의 연대를 보여주는 〈레겐트루데〉도 인상적이다. 전 세계 ‘톨키니스트’를 탄생시킨 《반지의 제왕》과 역시 세계적인 팬층을 거느린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시리즈도 생태의 관점에서 촘촘하게 분석된다. 마지막 작품은 이 책에서 소개되는 유일한 국내 작가인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지구를 떠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 모퉁이마다 씨앗을 심는 인물들을 통해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고, 그러자 약속이 이들을, 우리의 세계와 미래를 지켜주었다.”
“‘그대들이 먹을 양식을 불이 먹을지어다. 그대들이 마실 물을 불이 삼킬지어다’라는 엔릴의 저주는 길가메시가 아니라 그의 먼 후손 대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또한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다. (…)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후와와의 시신을 신들 앞에 놓았을 때, 엔릴이 꺼낸 첫마디는 ‘왜 이런 일을 했는가?’였다.” _2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