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의가 전하는 사유의 기록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일상에 대한 조용한 관찰
삶을 마무리하는 어느 시점, 사람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말을 남기고 싶어질까. 『죽어서 삼일』은 수필가 이의가 등단 18년 만에 펴내는 세 번째 수필집으로, 전주에 터를 잡고 살아온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사유와 일상을 조용하게 정리한 기록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랜 수필 인생의 마무리를 조심스럽게 예감하며, 그간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담담히 되짚는다.
총 여섯 개의 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일상의 풍경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매화차 한 잔에 깃든 봄날의 기억, 낚시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하룻밤, 무창포에서 마주한 바다의 숨결 같은 장면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싼다. 동시에 기후위기, 미세먼지, 플라스틱 쓰레기 등 환경 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은 저자가 지닌 ‘공존의 윤리’와 생명 감각을 보여 준다. 다정한 시선으로 자연을 바라보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는 저자의 사유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또한 인연에 대한 회고는 이 책의 또 다른 정서적 중심축이다. 길상사 방문기 속에 담긴 김영한과 백석의 이야기, 오래된 벗이 보내온 그림 한 점에서 느껴지는 우정, 그리고 가족과 문우들에 대한 고마움이 따뜻하게 묻어난다. 가깝고도 평범한 관계들을 소중히 여기며,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한다.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마주한 고립과 회복, 아직 익지 못한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까지, ‘설익은 노년’이라는 말 속에는 아직 살아가는 중이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
『죽어서 삼일』은 화려하거나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천천히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작고 소박한 말들 속에 삶의 진심이 있다는 것을. 생의 어느 지점에서든, 다시금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는 문장들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