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智異』는 단순히 아름다운 산을 그린 화집이 아닙니다. 이 책은 네 해에 걸쳐 한 작가가 매 계절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자신을 비워내고, 자연과 마주하고, 마침내 지리산이라는 존재를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언어로 통역해낸 귀한 기록입니다. 수많은 문화재와 전설, 이야기들을 품고도 늘 중심이 되기를 사양해온 지리산처럼, 이 책 역시 소리 높이지 않고 조용히 감동을 건넵니다. 작가는 드로잉과 회화를 통해 지리산의 다양한 얼굴을 담아내며, 그것이 단지 보이는 풍경을 넘어서, 기억과 시간, 수행과 사색의 결과물임을 보여줍니다.
지리산을 다녀온 이에게는 낯익고도 낯선 반가움이, 가보지 못한 이에게는 묘한 갈망과 상상이 밀려옵니다. 눈 덮인 반야봉의 고요한 무게, 천왕봉의 일출을 마주한 감동, 화엄사 홍매의 선연한 생명력, 바래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능선의 부드러운 힘이 그림과 글을 통해 조용히 독자의 마음속에 스며듭니다. 자연을 사랑하거나 수묵화에 관심 있는 분들뿐 아니라, 긴 시간 무언가에 몰두해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은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지리 智異』는 예술이 자연을 어떻게 품고, 또 그것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자연을 이해하게 되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금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당신의 내면에도 하나의 지리산이 자라기 시작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