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국시대를 둘러싼 갑론을박
한국사에 무관심한 독자는 물론, 한국사에 친숙한 독자도 ‘남북국시대’라는 용어가 생소할 수 있다. 남북국시대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공존한 시기를 가리키는데, 이 용어를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면 당시 시대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작가는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독자와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북국시대란 용어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불완전하다는, 이른바 ‘통일신라’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함께 등장했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우연히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긴 했으나 고구려 영토의 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했고, 만주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건국되었으니, 통일신라라는 표현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따라서 발해를 한국사의 범주에 포함하자는 사람들, 나아가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배신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당대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기간을 남북국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일단 타당하다. 그렇다면 ‘통일신라’라는 명칭은 부적절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도 않다. 저자가 제1장 통일신라 편에서 거듭 강조하듯이 ‘일통삼한’이란 용어는 삼국통일 이후 즉위한 신문왕 시기부터 통용되었다. 당나라 사신이 무열왕 김춘추의 묘호가 왜 ‘태종’이냐고 따졌을 때 “김춘추가 김유신을 얻어 일통삼한했기 때문”이라 항변했다는 기록만 봐도, 당시를 살던 사람들 사이에 통일 의식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나당전쟁에서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이 신라라는 체제 아래 재편되었고, 세 나라의 백성이 당나라와의 전쟁에 투입되어 같은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 더군다나 나당전쟁으로 한반도와 만주에 끼치던 당나라의 지배력은 약해졌고, 그 틈에 고구려의 계승국인 발해가 세워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됐다. 즉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하며 건립되었다는 사실과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며 한반도를 통일했다는 사실은 충돌하지 않는다.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라고 부른다고 해서, 발해의 역사를 배제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신라인과 발해인을 무턱대고 하나의 민족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신라와 발해는 서로를 남북국으로, 그러니까 정통성을 다투는 국가로 이해하지 않았다. 서로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늘날 대한민국과 북한처럼 신라와 발해 역시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제2장 발해 편에서 거론하듯이 신라는 발해를 과거 삼한과 구분되는 ‘말갈족의 나라’로 불렀고, 발해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은 신라를 견제하고자 일본과의 외교에 힘썼다. 두 나라 모두 우리 역사의 한 갈래에서 뻗어져 나온 국가임은 확실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신라와 발해는 서로를 경쟁자 내지는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했다는 사실만 연거푸 깨닫는다.
그동안 교과서를 포함한 여러 매체에서는 양국의 후신으로서 고려가 한반도를 재통일했다는 거대하고 튼튼한 단일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 서사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신라인과 발해인이 나름의 동질감을 공유해야 자연스럽겠지만 그런 사료는 아직 발견되진 않았다. 양국이 적대했다면 이후 한반도를 제패한 고려는 과연 누구의 후신이 되는 것인가? 한반도 역사의 정통성은 삼국시대 이후 어떻게 고려로 계승되었는가? 독자들이 느낄 의문을 예측했는지, 작가는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으로서 제3장 후삼국시대 편을 마련하였다.
■ 더 나은 논쟁을 위하여
이문영 작가는 사료가 단일한 진실만 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거에 남긴 역사서의 기록조차 서로 충돌하는 일이 허다하다.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서는 합당하지 않은 서술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사료에서 거론하는 과거의 기록을 발밑에 둔 채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사료가 하나의 진실만 말하지 않듯이 역사적 맥락도 단일하지 않다. 발해는 만주를 지배하는 주체가 한민족에서 여진족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존속된 국가였다. 점차 ‘발해인’이란 정체성을 확립하던 말갈인은 228년 만에 발해가 멸망하며 그 정체성을 상실했고, 결국 별도의 국가를 건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발해는 전통적으로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한민족과 말갈족이 두 갈래로 뻗어가는 분기점에서 세워진 과도기적 국가였다. 또한 당나라와 신라 사이에서 발해는 자국의 생존을 모색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북방 유목민족, 일본과 교류하며 신라를 견제했다. 발해라는 나라의 복합적인 정체성, 남북국을 둘러싼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한다면 신라인과 발해인이 서로에게서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들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양국이 서로를 낯설게 느끼는 게 더욱 자연스럽다. 결국 이 문제에서 어색함 내지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입맛대로 역사를 왜곡하는 현대인의 잘못일 뿐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개념이나 목적을 위해 역사를 재단하는 현대인의 잘못일 뿐이다.
현대인의 시선에서 과거를 일방적으로 재단한다면 역사를 이해하기는커녕 역사를 자의적으로 악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즉 작가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바꿀 것을 요청한다. 신라와 발해가 번영하고 몰락하는 과정에, 고려가 신라인과 발해인을 흡수한 과정에 주목할 것을 거듭 당부한다. 두 강대국을 이기고 한반도를 제패한 신라는 내부의 부정부패와 권력 다툼으로 찬찬히 무너졌고, 한때 북방을 평정한 발해는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순식간에 패망했다. 신라와 발해라는 체제가 실패하자 시대는 후삼국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견훤의 후백제, 궁예의 후고구려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포용하지 못한 채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고집했다. 왕건의 고려는 신라국왕의 귀순을 받아내고 발해유민을 흡수하며 스스로 시대의 대안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우리가 만일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논쟁을 해야 한다면, 남북국시대가 지나간 후 새로운 세상이 어떻게 도래했는지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면 남북국시대와 후삼국시대의 역사를 배우면서 한반도 고대사를 바라보는 독자의 편협한 시야를 더욱 확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