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못한 남자,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여자 그리고 너무 늦게, 서로를 알아본 사람들에 대해 이 소설은 묻는다.
“나는 당신을 첫눈에 알아보았는데,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조두진의 연작소설 《365번째 편지》는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사람,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
그리고 사랑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양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사랑을 먼저 알아본 사람과, 끝내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 사이에침묵의 시간만이 길게 흐를 뿐이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첫눈에 반한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첫눈에 반하는 것은 비록 연인 자신들은 자각하지 못하지만, 두 사람이 오랜 세월 서로를 찾고 기다려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내가 첫눈에 반한 사람, 그러니까 나는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인데, 상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바로 내가 긴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이에요”라고 상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나는 그를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가 여러 번 설명하니 어렴풋이 알아보게 되는 것이 사랑일까.
그리고 소설은 다시 묻는다.
오래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이라고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그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때, 나는 상대방에게 또 상대방은 내게 어떤 얼굴을 보여주게 될까.
소설은 누구도 내 사랑을 응원할 수 없고, 사랑을 잃어버린 나를 위로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실수와 잘못에 대해 우리는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지만, 설령 터무니없는 원망일지라도 퍼부을 수 있지만, 사랑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위로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고민 끝에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사랑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간에 말이다. 하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는 한 남자는 열렬히 사랑했던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못했다. 못마땅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 각자 결혼한 이후에는 단 한 번 만난 것이 전부라고”
그가 오래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사랑했더라면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오랜 세월 찾고 기다려 온 사람을 먼 곳에 두고, 밋밋한 사람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무표정하게 살아간 그는 어떤 세상을 보았을까.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 사랑함에도 그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치카’는 그 사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