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약 과학자라면 무엇을 연구하고 싶은가? 블랙홀처럼 신비한 현상이나, 힉스입자 발견처럼 후세에 길이 남을 실험? 무엇이 됐든 좀 더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기, 세상이 훌륭하다고 정의하는 기준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궁금한 질문을 파헤치기 위해 용감히 뛰어든 과학자들이 있다. 이를테면, ‘벌에 쏘였을 때 어느 부위가 가장 아플까?’, ‘웜뱃의 똥은 왜 네모날까?’, ‘고양이는 고체일까? 액체일까?’ 같은 것을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탐구한 이들. 다소 황당무계하고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이 연구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리는 과학을 생각할 때, 복잡한 수식이 적힌 칠판, 엄숙한 분위기의 실험실, 인류의 삶을 뒤바꾸는 첨단 기술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과학의 출발점은 언제나 순수한 호기심에서 움튼 아주 사소한 질문들이었다. 이 책에 담긴 연구들은 우리가 과학이라고 믿어온 기존의 틀을 조금씩 비틀며, 과학이란 대체 무엇인지, 쓸모없어 보이는 엉뚱한 질문이 어떻게 과학의 지형을 바꿔왔는지 깨닫게 한다. 이 책의 저자인 〈과학동아〉 기자 이창욱은 괴짜들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그노벨상’ 수상 연구들을 소개하며,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진짜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B급 과학"이 있어야만 "A급 과학"도 존재한다
실험실의 돈키호테들이 전하는 낭만과 똘끼의 현장
과학기자로서 수많은 과학적 성과를 취재해온 저자는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른바 ‘A급 과학’의 뒤에 언제나 ‘B급 과학’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토양이 있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멋지고 대단한 연구가 되기엔 망측한 소재를 다루거나, 실험 방법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연구들, 누군가 쉽게 B급 과학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이런 연구들 속에서 의미 있는 후속 연구가 태어나고 과학의 경계가 확장되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이 B급 과학의 중심에 바로 이그노벨상이 있다.
이그노벨상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노벨상을 패러디한 상으로, “다시 할 수도 없고 다시 해서도 안 되는 업적”이라 불리는 웃긴 연구를 찾아내 시상한다. 그러다 보니 대중에게 소개될 때는 ‘변기 시트를 뒤집어쓰고 상을 받으러 나타난’ 장면이나 ‘야생에 나가 3일 동안 염소처럼 살아보기’ 등 과학자들의 기행처럼 느껴지는 모습에 더 주목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그노벨상을 단지 ‘웃긴 이야기’로만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웃음 뒤에 숨은 과학자들의 피, 땀, 눈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사람들의 조롱을 무릅쓰고 그동안 터부시되어 온 인간의 배설물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거나, 단세포 생물인 점균에게 미로 풀기 문제를 시켜 우리에게 ‘지능’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들을 보고 있자면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이 마치 실험실에서 활약하는 돈키호테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복잡한 실험은 딱 맞는 비유로 단번에 이해하게 만들고, 문장 곳곳에 농담을 녹여내는 기술로 과학에 대한 장벽을 단숨에 허물어버리는 저자 이창욱의 글솜씨가 더해져 ‘웃기려고 하진 않았지만 무척 웃긴’ 과학 교양서가 탄생했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입을 딱 벌어지게 하는 기상천외한 연구들의 향연을 선보인다. 과학은 늘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지만, 그 질문이 꼭 거창하거나 고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확인시켜 준다. 후반부에서는 이 기발한 실험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할 필요성에 주목하며, 성과 중심의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이상한 호기심이라는 변호하기 힘든 가치를 왜 지켜내야만 하는지 살펴본다.
“성공에는 운과 재능 중 무엇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까?”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의 쓸모를 말하다
인간은 모든 대상에서 쓸모를 찾는다. 과학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이 “그런데 이런 거 연구해서 어디다 쓰나요?” 같을 질문을 받는다. 이그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유체역학자 데이비드 후는 어느 날 아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다 가슴팍에 오줌을 맞고 만다. 그는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마음 속으로 숫자를 세다가 4.5킬로그램의 아기가 21초 동안 오줌을 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 역시 방광을 비우는 데 23초가 걸렸다. 갓난아기와 성인 남성의 소변량은 거의 10배 차이가 날 텐데 소변 배출에 걸리는 시간은 겨우 2초 차이였다. 이 축축한 발견은 곧 “동물들의 소변 배출 시간은 몸무게에 상관없이 일정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그는 동료 연구자인 퍼트리샤 양과 소변을 유체역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유체역학적 방법론을 비뇨기계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연구는 없다시피 했다. 이 연구는 오줌뿐 아니라 혈관 속을 흐르는 피처럼 인간의 내부를 유체역학적으로 살펴보는 ‘생체유체역학’이라는 분야의 신호탄을 쏘아 올림과 동시에 우리에게 이런 통찰도 안겨준다. “당신이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을 보는 데 21초가 아니라 1분이 걸렸다고 생각해봐요. 이건 분명히 건강상의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43쪽)
다른 한편에는 ‘이게 과학의 영역인가?’ 싶은 연구들도 존재한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며, ‘운이 좋은 사람’ 또는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고는 한다. 그렇다면 성공에는 운과 재능 중 무엇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까? 이론물리학자인 알레산드로 플루키노 교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험을 진행했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1000명의 사람을 행운과 불운이라는 무작위 사건에 노출시킨 것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컴퓨터 속에서 40년의 시간이 흐른 후 대부분의 사람이 매우 가난해졌으며 소수의 사람만 처음보다 훨씬 큰돈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부를 거머쥔 소수가 평균 수준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부자인 이유는 단지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불운보다 행운을 더 많이 만났기 때문이었다. 플루키노 교수의 복잡계 모델링 연구는 물리학의 방법론으로 능력주의 신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성공’의 비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조언을 건넨다. “제 제안은 행운을 얻으려면 가능한 많은 기회에 도전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131쪽) 그의 조언을 과학계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을 바꿀 위대한 연구 하나를 얻으려면, 우리는 결국 더 많은 연구 더 다양한 연구를 지원하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의 쓸모는 거기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은 의외로 가깝다”
과학 예산의 1퍼센트를 약간 이상한 사람들에게 준다면?
이 세상에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동시에 받은 과학자가 딱 한 명 존재한다.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 앙드레 가임이 그 주인공이다. 어떻게 과학의 정중앙과 변두리를 조명하는 두 상을 모두 받는 것이 가능할까? 그 공통분모에는 ‘금요일 밤 실험’이라고 불리는 가임만의 독특한 연구실 문화가 있었다. 금요일 밤을 메인 프로젝트와 관련 없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시간으로 할애한 것이다. 무려 연구실 총 업무 시간의 10퍼센트에 해당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재미’에 중점을 둔 연구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약 15년 동안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대부분 실패했지만 세 번의 성공 사례를 남겼다. 그중 첫 번째는 가임에게 이그노벨상을 안겨준 ‘개구리 공중 부양 실험’인데, 고가의 실험장비 한가운데에 물을 붓는 다소 황당한 시도를 통해 가능했다. 또한 노벨상을 안겨준 ‘그래핀 추출 실험’도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면서 그래핀을 박리해내는 예상치 못한 접근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가임은 노벨상 수상 이후에 과학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약간의 유머 감각을 꼽으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노벨상을 받고 싶다면 먼저 이그노벨상을 받으라고 말이다.
노벨상 수상 시기가 다가오면, 한국은 왜 과학 분야에 있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내지 못하느냐는 논의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우리는 어쩌면 어떤 연구가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높을지에 주목하기보다, 우리 사회가 호기심과 상상력이란 가치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가이아 이론을 만든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은 국가 과학 예산의 1퍼센트만이라도 비정통적인 연구에 투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제도적으로 기초 연구와 과학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실패에 더욱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때, 인터넷이나 백신의 발명처럼 인류의 삶을 또 한번 뒤바꿀 획기적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이그노벨상의 창시자인 마크 에이브러햄스와 나눴던 대화를 들려준다. 그에게 어떻게 하면 한국이 더 많은 이그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지 물었더니, 에이브러햄스는 역대 이그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영국과 일본을 언급하며 엉뚱한 생각을 밀고 나가도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컸을 것이라 대답했다. 저자는 “한 연구가 앞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다줄지, 어떻게 인류의 삶을 바꿀지는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과학이란 본디, 어디서 시작될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책이 우리를 더 많은 엉뚱한 질문 속으로 데려다 놓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