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기보다 인간적 결함을 드러내는 예술 구하기
전통적 서사, 감정적 연기, 음악적 과잉을 배제한 순수영화(pure cinema)의 대가. 순수영화란 이해하거나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카메라로 구현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개념인 듯싶습니다. 한 매체가 다른 매체와는 구분된다는 감각을, 자신 아닌 타인에게까지 (시청각적으로) 인지시켜주기까지 그가 벌인 헌신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순수, 절제, 배제 같은 것들이 결코 적은 노력이나 덜한 행위와 동치는 아님을 감지하게 됩니다.
브레송에 따르면 영화는 연극, 문학, 회화와 같지 않을 뿐 아니라, 같은 체하지 않아야 합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기보다는, 시청각 언어로써 우리 보는 이의 감각을 일깨우고 사유를 자극하는 것이 영화여야 하죠. 자신의 열세 편 작품에서 관습적인 연기와 감정적 과잉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가치를 실천했, 이는 그의 독창적인 미학으로 구축되었습니다. 배우로 하여금 감정을 ‘연기’하는 대신 인간의 하나로 ‘존재’해줄 것을 청했던 브레송. 브레송이 절제한 만큼 우리들 관객은 바빠집니다.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데 에너지를 쏟아붓게 되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잘 짜인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보는 사람, 관여하는 사람의 지위를 획득합니다. 사실 이것은 틀린 말이에요. 원래 있던 지위를 다른 영화들처럼 앗아가지 않는다는 데 브레송의 독특한 배려가 있습니다.
사운드트랙이 분위기를 창조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을 발명했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화는 관객이 눈을 감을 때 보이는 것을 닮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에서 그의 영화는 비로소 완결되며, 그의 영화와 말은 우리 관객 자신에게도 참으로 자유로운 여정이 되고 맙니다.
배우가 인물로 변하는 대신에 인간 자체로 존재해야 한다면
독자 역시 수용자로 변하는 대신에 인간 자체로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브레송이 전문배우를 안 썼다고 하니, 제 친구 하나는 그러더라고요. “돈 없어서 그런 거 아냐?” 그런데 브레송은 데뷔 초보다 말년에 들어서 더욱 과감히 전문배우와 결별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했어요. 그가 자신의 법을 만들고 지킬 수 있던 것,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에서 절대적인 통제권을 유지하며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손상하는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사실상 그의 투쟁이라고 봐도 좋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누구 한 사람의 독창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독선이라기보다는, 그 같은 독창이 복수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는 기적이 아닐까요? 브레송의 독창은 장뤽 고다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같은 동료와 앙드레 바쟁 같은 이웃에게 영감을 넘어 힘으로 흡수되었으니까요. 브레송의 창작철학을 종합하는 이 대담집은 영화학도, 연구자, 예술가, 그리고 누구보다 이를 읽는 우리 자신에게 기운을 줄 것입니다. 관객을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라 브레송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기에, 독자를 위해 내뱉은 말이 아니라 브레송 자신을 위해 뱉어낸 것이기에.
○인터뷰이. 로베르 브레송 Robert Bresson 1901.9.25 - 1999.12.18
“당신이 없었다면, 결코 보이지 않았을 것을 보이게 하라.” 프랑스의 영화작가 로베르 브레송은 고등학교 때 그림을 시작했고 언어와 철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933년 첫 단편 시나리오를 쓸 때까지 화가 경력을 쌓았다. 2차 세계대전 시 군에 입대했고 1940년 독일군의 전쟁포로가 되어 1년여를 보냈다. 1943년 첫 장편영화 「죄악의 천사들」을 시작으로 1983년 마지막 영화 「돈」까지 40년간 총 열세 편 영화를 완성했다. 그의 영화들은 대체로 비전문배우(그는 ‘모델’이라 불렀다), 생략과 암시, 절제된 사운드트랙 등 ‘금욕’에 가까운 방식으로 연출되었으며, 이러한 간결함이 오히려 영화예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영화 개봉 시의 몇몇 인터뷰를 제하고는 목소리를 좀처럼 내지 않았기에 개인 삶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미하엘 하네케, 짐 자무시, 다르덴 형제,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같은 후배감독이 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장뤽 고다르는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의 소설이고, 모차르트가 독일의 음악이듯, 브레송은 프랑스의 영화 그 자체다.”라고, 프랑수아 트뤼포는 “브레송이야말로 작가라는 용어를 진정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감독”이라고 이야기했다. 브레송 자신은 ‘감독’보다 ‘작가’라는 표현으로 스스로를 소개했는데, 이는 영화 또한 일종의 글쓰기이고 더군다나 새로운 글쓰기라는 그의 믿음에 바탕했다. 그는 오래 계획해온 「창세기」를 스크린에 옮기지 못한 채 1980년대에 은퇴했고, 1999년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