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가 손잡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가?
트럼프, 푸틴, 시진핑… 21세기 세 제국의 위험한 정교 동행을 파헤친 역작
정치와 종교가 은밀하게 손을 맞잡으며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2024년 미국 대선, 장기화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날이 통제를 강화하는 중국의 종교 정책. 이 거대한 사건들의 중심에는 ‘종교’를 활용한 국가 권력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21세기의 지배적 제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세 나라가 어떻게 종교를 이용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분석한 신간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 트럼프와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 푸틴의 ‘러시아 세계’, 시진핑의 ‘종교 중국화’』가 한울에서 출간되었다.
정치·종교사회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근대적 원칙이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자리를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저자는 더는 종교가 개인의 내면이나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지배 전략을 설계하는 핵심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제 우리는 종교의 얼굴을 한 정치와 정치의 탈을 쓴 종교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 제국의 사례를 통해 정치와 종교의 위험한 결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트럼프와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
2024년 대선을 통해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그의 성공 뒤에는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라는 강력한 이념이 있다. 책은 트럼프가 어떻게 백인 우월주의와 손잡고, 복음주의 기독교 우익을 정치적 우군으로 동원했는지를 추적한다. 나아가 이들의 결합이 미국의 종교·이민·인권 정책을 어떻게 바꾸고, 미국 사회를 어떻게 분열시키며, 종교의 자유라는 가치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독교 우익 세력이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 가담한 일을 언급하며, 정치와 결탁한 종교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위협할 수 있는지 경고한다.
푸틴의 ‘러시아 세계’와 우크라이나 침공
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러시아 세계(루스키 미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와 러시아 정교회의 강력한 지지가 있다. 책은 푸틴 정권이 내세우는 ‘국가 안보’와 러시아 정교회가 주장하는 ‘영적 안보’가 어떻게 결합해, 옛 소련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지정학적 야망과 정교회의 지배권 확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지 파헤친다.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가 푸틴의 전쟁을 ‘성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은 정치와 종교의 공생 관계가 낳은 비극을 명확히 보여준다.
시진핑의 ‘종교 중국화’와 중국몽
시진핑은 ‘중국몽’이라는 중화민족 부흥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종교 중국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종교를 공산당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넘어, 종교의 교리와 사상 자체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맞게 재해석하고 변형시키려는 시도다. 책은 중국이 도교, 불교, 이슬람교, 개신교, 천주교의 5대 종교를 애국종교협회를 이용해 통제하고, 외래 종교의 영향을 차단하며, 이를 통해 어떻게 국가적 단일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지 상세히 다룬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
저자는 세 제국의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정치의 절대화’와 ‘종교의 상대화’라는 위험한 경향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타협을 본질로 삼아야 할 정치가 상대를 ‘악마’로 규정하고 절대 선을 자처하고 있으며,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할 종교는 국가 이익이라는 세속적 목표에 종속되어 개별주의적 ‘주술’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절대자를 동원하는 주술이, 국가 단위에서 패권 장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저자는 권위주의적 정치와 비합리적 신념이 결합해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저지른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상당수 가담했던 것처럼, 정치와 결탁한 종교가 파시즘의 꿈틀거림을 낳고 민주주의 역사의 퇴행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비단 미국, 러시아, 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질문이다.
대한민국 역시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과 2025년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난동을 겪었다. 이 중 특히 법원 난동은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는 청년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정치와 종교의 야합이 수사적 수준을 넘어 물리적 폭력을 야기할 정도로 진행되었음을 방증한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비웃고 자기네 집단 결속에만 집착하는 파시즘이 바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이 책은 ‘종교는 본질이 없고 역사만을 지닌다’는 종교사회학의 명제를 바탕으로, 막스 베버로부터 이어진 깊이 있는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의 정치·종교 관계를 비교하고 분석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프리즘을 제공한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혼란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은 필수적인 안내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