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는 어떤 이유로 나를 버렸을까?
나는 왜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대한민국’ 하면 어떤 정의가 떠오를까. 해외원조국에서 해외공여국이 된 나라, 세계 10대 경제대국, 한강의 기적까지, 객관적인 지표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분명 선진국에 속한다. 그러나 이렇게 자랑스러운 명칭들 뒤에는 부끄러운 명명들도 숨어 있다. 자원도 없고 달러도 없던 대한민국은 팔 수 있는 모든 것을 팔았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정권 시절인 1953년부터 2021년까지 64년간 16만 9,454명의 아동을 미국으로, 네덜란드로, 덴마크로 ‘수출’했다. 이에 대한민국이 ‘입양아 수출’도 세계 3~4위(누적 수는 1위)라는 불명예를 훈장처럼 안고 있다.
영문도 모르고 고국을 떠난 어린아이들은 갑작스럽게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야 했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던 그들은 어느 순간 문득 결핍을 느끼게 된다. ‘나의 뿌리는 어디일까’, ‘나의 친부모는 왜 나를 버렸을까’,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찾을 순 없을까.’ 이 책은 그 질문을 40여 년간 안고 살아오던 한 입양인의 긴 답변이다.
저자는 만 두 살에 네덜란드 부모에게 입양된 미샤 블록(한국 이름 박은혜)이다. 그는 자라는 내내 마음에 의문을 품고 있던 그가 내 안의 결핍과 고통에 정면으로 대면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엄마를 찾기 위해 낯모를 정치인을 만나고, 주소 하나 들고 부평에 있는 생부의 집을 찾고,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국 방송국과 신문사를 돌아다니고, 수원의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광장 한복판에서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옷을 꺼내 입고 카메라 앞에 선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고통에 직면하는 인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의도적 버려짐과 예정된 결핍,
그럼에도 되찾은 사랑에 관하여
과거의 결핍과 상처를 직면하기로 한 그는 자신의 친부모를 찾기로 결심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한국에 도착한 그는 무서운 진실과 직면한다. 자신의 이름, 입양 기록, ‘부모 미상’이라 전해 들은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알고 있던 모든 정보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뿐 아니라 오늘날의 거짓과도 싸워야만 한다. 나의 엄마는 왜 나를 생부인 ‘미스터 박’에게 버리고 떠났나? 미스터 박은 어떻게 자식을 고아원에 맡길 수 있는가? 어째서 나는 거짓된 정보들만 가지고 있는가? 이 과정에서 오고 간 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자신의 입양 과정에 얽힌 이 모든 의문들을 풀어내고 결국 내면의 슬픔을 위로받고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과거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때로는 분노하고, 대체로 좌절하고, 종종 슬퍼하고, 때때로 무너진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일어나 작은 단서 하나라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결국 그 수많은 거짓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 자신의 엄마와 마주한다. 수십 년간 떨어져 지낸 모녀이건만 그들은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본다. 좌절감에 비틀거리는 상황에서도 기어이 한 발자국씩 내딛어 진실을 마주한 그의 모습을 본 독자들은 문득 ‘희망’의 힘이 얼마나 센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과거의 시간,
우리 사회는 그의 결핍에 대한 책임이 있다
지난한 기다림과 어김없는 실망, 다시 희망을 반복하는 그를 향해 많은 사람이 묻는다. “왜 친어머니를 찾고 싶어 하나요?” 네덜란드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냐고, 기억도 나지 않는 부모를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찾아다닐 필요가 있냐는 그 물음에 저자는 힘주어 대답한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상상해보라. 얼굴을 떠올릴 수도 없고,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웃는지, 나를 바라볼 때 어떤 표정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 행복한지, 여전히 살아 계신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한, 내 안의 일부는 늘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생부모를 찾는다는 건 비단 ‘핏줄로 이어진 질긴 인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버려졌다는 느낌’은 삶 전반에 뿌리를 내린다. 어떤 부모가 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지, 이 모든 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친다. 무의식 속에 상대를 잃을까 봐, 버려질까 봐 겁이 나 모든 것을 맞추거나,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일지도 모른다. 그는 겨우 두 살 때 버려졌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친부모 찾기가 거의 사막에서 바늘을 찾아낸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노력은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이를 ‘한 사람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정리되어도 되는 것일까. 그의 현재는 우리나라의 과거가 만들어낸 결과다. 아동 한 명이 입양될 때마다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으니 정부는 불법적인 기관 운영에 눈을 감고, 입양 단체는 한쪽 부모의 동의만 있어도 아이를 ‘유기된 아동, 부모 미상’으로 조작해 해외로 보내고, 거짓으로 문서를 꾸민다. 거짓말, 가짜 문서, 돈이 끈적하게 얽힌 상황.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해외 입양인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인생을 찾을 길이 없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이제 우리가 그 물음에 대해 답을 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