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슬랍스키의 예술 세계를 온전히 만나다
러시아어 원본 전집(전 8권) 국내 첫 완역
20세기 연극계의 거장 K. S. 스타니슬랍스키의 전집이 국내 최초로 완역 출간된다. 스타니슬랍스키 전집(이하 ‘전집’, 전 8권)은 지난 세기 초·중반 세계 각국에서 번역·출판되었지만 한국에서 러시아어 원본 전집의 완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어판 전집은 1954~1961년 러시아 국립 출판사 예술에서 출간된 전집을 저본으로 삼아 원전의 가치를 최대한 살렸다. 번역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박상하 교수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윤현숙 교수가 맡았다.
콘스탄틴 세르게예비치 스타니슬랍스키(1863~1938)는 러시아의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연기교육자로 현대 연극 예술, 특히 배우 예술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을 창립하고 오늘날 전 세계의 배우 교육기관에서 기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배우 연기 메소드인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을 창조했다. 스타니 슬랍스키 시스템은 배우 예술의 바이블이라 불리기도 하고, 이 ‘시스템’에 힘입어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 예술의 역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가장 걸출한 이론가로도 평가받는다. 그의 시스템은 여전히 연극 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연극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어판 전집은 저자 스타니슬랍스키와 편집자들의 의도를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러시아어 원본의 내용과 체제를 충실히 살려서 편집되었다. 기존 중역본의 내용 오류와 누락, 오역 등을 철저히 검토하여 잘못을 바로잡았다. 특히 국내 연극 학교와 현장에서 혼용되고 있는 ‘시스템’ 관련 용어를 정립하기 위해 번역어 사용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확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연기 예술의 바이블, 전 세계 배우 교육을 선도하다
배우의 창조적 본성을 이론화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오늘날 전 세계의 배우 교육기관에서 기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연기 메소드이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창조적 본성에 따른 법칙을 하나의 전체적이고 조화로운 시스템으로 구축하고자 살아생전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실제 작업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하고, 이론과 실제 작업을 결합해 나가며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한 방법론을 개발했다. 그는 ‘만약에’, ‘대상 없는 행동’ 등 다양한 연기 기법을 제시하여 현대 연기 기술의 기틀을 마련했다.
‘시스템’은 무엇보다 러시아의 민주적 연극 문화의 기반 위에서 시작되고 뿌리를 내렸다. ‘시스템’ 창조의 역사는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발전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모스크바 예술 극장은 무대 예술의 혁신을 꿈꾸며, 체호프, 고리키 등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실험적인 연극을 추구했다. 이 과정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네미로비치-단첸코를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오랜 기간 연구하고 실험하며, 배우들의 창조성을 이끌어내고, 작품의 진정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방법론인 ‘시스템’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시스템’은 단순히 개인의 이론이 아니라, ‘모스크바 예술 극장’이라는 실험적인 무대에서 끊임없이 검증되고 발전된 결과물이다. 당대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성공은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시스템’은 곧 ‘예술 극장’의 전투적인 사상적, 창조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여러 작가의 작품을 연출하고, 수많은 배역을 소화하며 ‘시스템’을 실천하고 발전시켰다. 특히, 체호프 극의 인물들을 통해 ‘시스템’의 효과를 극대화했으며, 나아가 오페라 무대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시스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오늘날에도 ‘시스템’은 많은 연극인들에게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마지막 20년
: 리얼리즘 확립과 발전을 위한 투쟁
전집 6권은 스타니슬랍스키의 마지막 20년, 즉 1917년부터 1938년까지의 삶과 창조 작업을 다루고 있다. 5권에 이어 연대순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미완성 저술에서 선별된 기사, 연설, 다양한 사회 및 극장 사건에 관한 그의 반응, 회고, 단편 글이 실려 있다. 6권은 소비에트 극장에 사실주의 메소드를 정착시키기 위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치열한 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위대한 예술가이자 국민, 애국자, 통찰력 있는 사상가, 삶의 섬세한 관찰자, 극장 지도자, 여러 배우 세대의 교육자로서 그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6권의 글들은 소비에트 연극 문화 발전에 있어서 스타니슬랍스키의 뛰어난 역할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게 한다. 또 소비에트 영향 아래 이루어진 그의 이념적 개혁 과정, 사회적-정치적 관점 형성, 그리고 이와 관련한 그의 이론과 예술적 실제 작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책에 실린 주요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혁명 이후 연극과 극장의 역할과 과제 제시
「모스크바 배우 연합 성명서 초안」에서는 스타니슬랍스키가 2월 혁명과 10월 사회주의 대혁명 이후 연극계가 직면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평생 꿈꿔왔던 민중 극장 창립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는 광범위한 대중의 미학 교육에 기여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 여기고, 연극 예술의 성과를 전 국민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러시아 극장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겪고 있다”라고 강조하며, 무대 작업자들에게 전문적이고 이념적이며 창조적인 통합을 이루고 예술성이 뛰어난 공공 민중 극장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평화를 위한 투쟁의 극장」, 「‘아버지 집에서 아마추어 공연으로 시작되어…’」, 「창조적 친밀감」, 「10월 혁명 20주년 기사 자료 중에서」, 「우리는 붉은 깃발 옆에 평화의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다닌다」에는 민중의 평화와 우정을 위한 투쟁이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연극 예술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민족 간 평화와 우정을 위한 투쟁 문제를 꼽았다. 그는 다양한 국가와 민족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광범위한 문화적 유대를 발전시키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예술이 인류의 높은 인본주의적 이상을 위한 강력한 투쟁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므하트의 현대적 레퍼토리 구축과 해외 순회공연 회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므하트의 새롭고 현대적인 레퍼토리 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소비에트 극작품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극장-판테온에 대해」, 「므하트 40주년을 맞이하여」, 「배우 예술과 연출가 예술」, 「대정부 호소를 위한 준비 자료 중에서」, “새로운 관객의 극장 유입”, 「제1차 소비에트 작가 연방 대회」, 「므하트는 현대 희곡을 간절히 기다린다」 등의 글을 통해 므하트의 창조적 역사와 이념적, 예술적 성장의 주요 단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으며 레퍼토리와 극작품 문제에 대한 스타니슬랍스의 근본적인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극장-판테온에 대해」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예술 극장’을 러시아 예술의 판테온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근본적인 개편을 제안하며, ‘예술 극장’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므하트 30주년 기념 모임 연설」, 「므하트 40주년을 맞이하여」, 「대정부 호소를 위한 준비 자료 중에서」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극장의 결점과 자신의 지도력의 잘못을 밝히고,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므하트의 창조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혁신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1922~1923년 ‘예술 극장’의 유럽과 미국 순회공연에 대해」는 1920년대 초반 러시아 연극 예술의 세계적 권위를 강화시킨 므하트의 유럽 및 미국 순회공연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회고이다. 장기간 극장의 해외 순회공연을 이끌었던 스타니슬랍스키는 므하트 순회공연을 러시아 민족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자 애국적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순회공연을 이어갔다. 이 회고에서 그는 일상생활, 문화, 예술의 모든 현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유럽과 미국 체류 첫날의 직접적인 인상을 독자들과 공유한다.
형식주의에 대한 투쟁과 사실주의 전통의 계승
형식주의에 대한 투쟁의 주제는 「E. B. 박탄고프와의 마지막 대화에서」, 「다양한 연극 유형」, 「10월과 극장」, 「민중의 무대로서」, 「10월 혁명 20주년 기사 자료 중에서」, 「므하트 40주년을 맞이하여」에서 잘 나타난다. 스타니슬랍스키는 ‘다른 연극보다 더 격렬하게, 더 단호하게’ 형식주의의 위험성과 과거의 위대한 사실주의 전통을 과소평가한 것들과 맞서 싸웠다는 점에서 ‘예술 극장’의 역사적 공적이 있다고 보았다.
「말리 극장」,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100주년을 맞이하여」에는 ‘사실주의 전통 계승’이라는 주제가 잘 드러나 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예술에 있어서 진정한 혁신은 과거 세대가 획득한 풍부한 기술을 모두 습득하는 것을 토대로 생겨날 수 있다고 보았다. 1938년 소비에트 청년들에게 호소하며 스타니슬랍스키는 ‘오래된 문화가 만든 모든 것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오래된 사회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으로 문화를 끌어 올릴 것’을 촉구했다.
오페라 무대의 연출과 연극 교육에 관한 제언
「‘오페라 스튜디오’에 대해」, 「‘오페라 스튜디오 동료 협회’ 모임 연설」, 「오페라 공연의 법칙」 등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오페라 스튜디오’와 음악 극장 발전 문제에 전념한다. 콘서트와 무대 음악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한 차이콥스키에 이어 스타니슬랍스키는 오페라 음악이 무대적 법칙을 따르고 극적인 행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차이를 강조한다. 의상 콘서트로서의 오페라 공연을 거부하며 그는 모든 오페라는 ‘음악 연극’으로 간주되어야 하고, 주요 표현자는 가수-배우라고 주장한다.
「연출학과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연극 아카데미의 목표”, 「장인의 길」은 연극 교육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강하고 우호적인 집단을 위해 투쟁하라」는 소비에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젊은 배우 세대에게 남긴 스타니슬랍스키의 유언처럼 들린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