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괴상하고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알게 된
스스로 판단하고 욕망하고 행동하는 ‘불순한’ 어린이들
학교는 학생과 교사, 상식과 예외, 규정과 규범, 공적인 역할과 개인적인 관계의 경계가 나뉘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허물어지는 곳이다. 그렇기에 서류에 기재되는 단어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린이들이 학교 안에 선명히 존재한다. 저자는 학생과 교사라는 역할 사이에 그어진 선을 넘나들고, 교육과 존중 사이에서 무수한 맥락을 짚으며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어린이들을 바라본다.
저자는 어린이 시절 빈곤과 방임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어른이 되고 교사가 된 후에도 ‘이상하고’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어린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어린이를 이상적으로 묘사하거나 낙관적으로 예찬하는 일을 경계했고, 어른들이나 또래로부터 소외되는 어린이의 마음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렇게 어린이들과 ‘조금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학기가 끝날 때까지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이유 없는 무한한 애정을 주는 어린이도 있다. 적나라한 표현으로 선생님을 욕하는 쪽지를 몰래 주고받는 어린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른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현명하게 연대하고 서로를 돌보는 어린이들도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 어린이와 걸그룹 춤을 추는 남자 어린이가 있다. ‘찐따’나 ‘금쪽이’로 불리며 세상으로부터 소외되는 어린이가 있다. 저자가 응시한 어린이들은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렇기에 오히려 길게 이어지는 스펙트럼 같은 존재였다. 수많은 어린이들을 만나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저자가 어린이들과 맺은 관계는 다정하고 안온한 관계가 아니라, 안도할 수 없는 관계였다. 어린이들은 무조건 어른들의 말을 잘 듣거나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과 생각에 따라 판단하고 욕망하고 행동했다. 저자는 ‘순수함’이나 ‘어린이다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귀여워하거나 흐뭇해하는 시선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어린이들을 ‘불순한 어린이’라고 규정하고 글을 썼다. ‘불순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순조롭지 않은 삶의 단면들을 드러내고 싶어서다. 또한 독자에게도 그 ‘불순함’을 함께 들여다보기를 요청한다.
학교폭력 가해자 어린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린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무균실이 아닌, 사회 속 어린이를 바라보고 관계 맺는 법
우리가 쉽게 이해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어린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학교폭력 가해자인 어린이가 있다.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어린이가 있다. ‘건물주’와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고 외치는 어린이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배우며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가 있다. 어떤 어른들은 그런 어린이들을 손가락질하며 ‘요즘 애들’의 세태를 걱정한다.
하지만 어떤 가해자 어린이는 자신의 가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일베 용어를 쓰는 어린이를 들여다보면 반사회적인 표현에 이끌리는 어린이들을 매혹시킨, ‘놀이’로 변질된 지금의 온라인 혐오 문화가 있다. 건물주라는 장래희망의 맥락 속에는 오랫동안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아왔던 우리 사회가 있다. 세월호 참사를 글로 배우며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사회는 도덕적이며 국가는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며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 있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은 사회의 어둠이나 병폐와 무관한 무균실 속의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들은 흔히 ‘꿈나무’나 ‘미래’로 불리지만, 그들이 자라나기 위해 뿌리를 박고 있는 시공간이 ‘지금 여기’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저자는 자신이 목격한 어린이들의 어두운 면을 생생히 보여주면서도, 그 이유와 맥락이 어른들이 만들고 유지해온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짚는 의무를 잊지 않는다. 나아가 어른들이 어린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고 변화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사회가 어린이를 규정하는 편협한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이토록 다양하고 다채로운 입체적인 어린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시민이자 사회 구성원인 어린이를 미래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로서 관계 맺을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