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 앉아 20분 따라 그렸을 뿐인데
유리창 너머 작품이 내 것이 됐다!
여행도 기록도 필수인 시대,
그림책 작가가 제안하는 가장 ‘신박한’ 여행 방법
요즘 세대의 소비 키워드 중 하나는 단연 ‘경험’이다. 이들은 여행과 전시 같은 경험을 통해 취향을 찾고, 이를 기록하며 자기만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진심이다. 하지만 수백 수천 장 찍은 여행 사진은 정리조차 버겁고, 여행기를 쓰자니 몇 시간 전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 소중한 경험을 제대로, 가감 없이 내 것으로 만들 신박한 방법, 어디 없을까?
약 17년 전인 2008년, 누구보다 특별한 방식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림책 작가 이고은이다. 유학 중이던 그녀는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하 V&A 박물관)에 자주 갔는데, 매번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20분 동안 따라 그렸다. 선이 삐뚤고 비율이 어긋나도 상관없었다. 만국 박람회 기념 머그잔, 로댕의 조각상,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석기, 박물관에 놓인 스툴까지.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유리창 너머의 작품은 어느새 그녀의 것이 되었고, 그림을 그리던 당시의 기억과 감정도 생생히 저장되었다.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드로잉을 보면 그곳의 당시의 냄새와 소리, 생각과 감정이 되살아나요.” 이고은 작가의 말이다.
『그리면서 본다』는 이고은 작가가 2008년 V&A 박물관에서 직접 그린 30여 점의 드로잉을 중심으로 쓴 드로잉 에세이다. 17년 전의 그림을 보며, 작가는 오늘 떠오르는 감정과 기억을 덧붙여 글로 엮었다. 그런데 읽다 보면 마치 어제 다녀온 듯한 박물관 여행기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믿기 힘들다면 일단 한 번 펼쳐 보자. 직접 경험해 보면 “이거, 내 것으로 만들기에 참 괜찮은 방법인데?” 싶을 것이다. 이고은 작가가 제안하는 ‘20분 여행 드로잉’은, 나만의 기념품을 만드는 가장 특별한 방법이다.
필요한 건 약간의 용기와 따라가는 눈
그리고 화장실에 미리 다녀오는 것과 편안한 마음가짐뿐
‘20분 여행 드로잉’을 권하면 대개 이렇게 말한다. “저는 그림을 못 그려요.”, “그려본 적도 없어요.”하지만 이고은 작가는 단언한다. “중요한 건 잘 그리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걸 눈으로 마음껏 따라가는 거예요. 장식을 하나하나 좇다 보면 그 자체가 놀이가 돼요. 잘 그리겠다는 부담보다, 보고 싶은 걸 다 그려 보겠다는 마음이면 충분해요.”
물론 드로잉을 하려면 약간의 용기는 필요하다. 스케치북을 꺼내고, 펜 뚜껑을 열고, 주변을 살피고, 자리를 잡고…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사람들의 시선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쳐다보는 사람도 보통 1분 안에 지나간다. 20분 동안 한 작품 앞에 머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아니, 이 책을 읽은 우리뿐이다.
『그리면서 본다』를 펼치면 “나도 스케치북 하나 사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드로잉에 필요한 준비물 리스트와 작가의 꿀팁, 여행 드로잉을 즐기는 마음가짐까지 만화로 친절하게 담겨 있다. 창조적인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딱 두 가지. 화장실에 미리 다녀오는 것, 그리고 편안한 마음가짐이다.
작품의 실물 사진과 현재 전시관 위치 수록!
드로잉과 실물을 비교하면 작품 보는 재미가 두 배
이고은 작가는 2008년의 드로잉에, 작품명과 제작 지역 및 시기, 작품이 전시된 방 번호는 물론당시 전시 안내 문구까지 그대로 적어 두었다. 작가의 손에서 자유롭게 표현된 선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이 작품,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을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 책은 2025년 6월을 기준으로 갱신된 작품명과 전시관 위치를 권말의 ‘찾아보기’에 정리해 두었다. QR코드를 통해 실제 작품 사진과 정보도 확인할 수 있다. 실물과 드로잉을 같이 보면, 관찰하는 눈과 그리는 눈이 함께 자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0분 드로잉 여행’의 진짜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에게 20분 드로잉을 추천합니다〉
- 여행을 더 깊이 기억하고 싶은 분
- 여행 중 하루쯤은 천천히 걸어 보고 싶은 분
- 그리기에 소질은 없지만, 관찰하고 표현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분
- 기념품 가게가 흥미롭지 않고, ‘나만의 여행 기념품’을 갖고 싶은 분
- 걷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나고, 20분 정도 앉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