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아 출간된 『호국영웅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쉽게 “과거”라 부르고 지나쳐왔던 전쟁의 한복판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단순한 군사 기록이 아니다. 이름 없는 병사, 전투의 최전선에 섰던 노병, 이제는 고인이 된 이들의 살아 있는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들려주는 ‘증언의 책’이자 ‘기억의 서사시’이다.
저자 양정훈은 자신의 조부 양태석 일등상사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6·25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채록했다. 인터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닌, 전투의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병과별 작전 상황까지 세밀하게 담겨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실제 전장의 냄새와 총성, 혼란, 두려움을 생생히 체감하게 한다. 특히 육탄특공대, 포병 지원, 공병대의 지뢰 매설, 철수 시 다리 폭파와 같은 작전묘사는 마치 한 편의 전쟁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빛나는 지점은, “국가를 위해 싸운 군인”이라는 영웅화된 이미지 너머, 한 사람의 아들, 남편, 동료로서의 병사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따뜻한 정, 두려움, 부상, 생존의 경험을 숨김없이 담아낸다는 점이다. 한참을 싸운 뒤야 자신이 이미 ‘전사 처리’ 되었다는 걸 알았다는 어느 병사의 회고, 민가에 숨어들던 적 탱크를 수색해 파괴하던 특공대의 침묵, 포화 속에서 철모 대신 흙을 뒤집어쓴 채 살아 돌아왔던 순간들…
이 책은 전쟁을 ‘이긴 자’의 역사가 아닌, 살아남은 자와 잊힌 자들의 기록으로서, 다시 쓰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은 단지 추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한다.
출판의 형식은 단정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각 증언은 자료적 근거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역사적 가치 또한 높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육군군사연구소 등의 기록과 사료를 적극 활용하여, 회고와 사료의 균형을 잘 맞추었다.
『호국영웅들의 이야기』는 단지 6·25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기억의 책임’을 짊어진 우리에게 묻는다. “누구의 목소리를 기억할 것인가?” “무엇이 진정한 애국인가?” 이 책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써야 했던 기록이며, 이 땅 위에 자유를 지키려 했던 이름 없는 자들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