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 없는 복제들의 세상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장편과 달리 그 내용이 다채로워 각 작품들의 주제를 하나의 그릇에 담기는 어렵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그 무엇이 주제라고 정의할 때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정신을 찾아내거나 발견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중심이 되는 문제를 발견하고 찾아내는 작업을 결코 소홀히 할 순 없다.
문학평론가 김진수는 박석근의 소설을 이렇게 평한 바 있다.
“박석근의 소설 세계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과 자존감을 버려야 하는 벼랑 끝에 몰린 인물들을 통해 자본의 폭력에 일상을 잠식당한 사회적 약자들의 조명이고, 유토피아적 삶의 역설을 통해 안온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불안과 소외의 추적이며, 삶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결국 허구로서의 소설이 실재로서의 현실에 대응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은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현실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미지의 허구를 폭로하는 것이리라. 박석근 소설은 앞으로도 여전히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의 허구를 드러내는 아이러니를 실험할 것이다.”
박석근 작가의 소설 세계에 대한 문학평론가 김진수의 예견은 정확했다. 그러므로 이번 소설집은 그의 앞선 소설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문학창작이란 영감을 받아서 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내력(來歷)에 의한 결과물이기에 그러하다.
문학작품의 주제적 접근은 문학작품 분석의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주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성향의 창작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 주제 비평은 퇴색한 문학평론의 한 방법으로 폄하되거나 소재주의 문학연구의 한 갈래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학 작품 해설에 주효하다.
이 단편집 『인어를 보았다』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정신은 한마디로 ‘아우라 없는 복제들의 세상’의 다름 아니다. 현대인들은 아우라 없이, 아우라를 상실한 채, 아우라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박석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애초 없던 아우라를 만들거나, 잃어버린 아우라를 되찾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미테이션」에서 원본과 똑같아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그’가 그러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에서 이사를 한 뒤 전에 살던 집에 숨겨놓은 연서(戀書)를 한사코 찾으려는 ‘그녀’가 그러하고, 인어를 보았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창수’가 그러하고, 「삼가 명복을 빌다」에서 잘나가던 대기업 사원이 폐인이 된 이유가 그러하다. 이 세계는 원본 없는 복사본, 아우라 없는 복제들이 실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것은 부정과 긍정의 담론을 넘어 현대사회에의 현상이며 조건이다. 주지할 것은 시뮬라크르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며, 아우라 없는 복제들과의 정상적 관계를 모색하는 일이다. 박석근 소설들은 바로 그러한 관계를 모색하는 지점에 놓여있고, 그의 소설들이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