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학문과 서구 학문의 사이에서
이 시기의 핵심적인 물음은 단순히 중국 학문과 외국 학문, 과거 대상과 현재 대상, 전통적 방법과 새로운 방법 간의 대립이 아니었다. 오히려 밀려드는 서구 문명의 영향 속에서 점차 쇠락해가는 중국 전통에 대해 여전히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가 중심이었다. 당시 지배적인 흐름은 “외래 학설을 수용하자”는 쪽이었고, 그 정당성과 필요성은 논쟁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기에, 대부분의 주장은 결국 “민족의 위상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자칫 전통에 집착하는 수구적 태도로 비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더 복잡한 맥락이 있다. 서구 학문의 유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고, 장타이옌과 같은 인물들이 아무리 구학문의 문제를 개선하고자 해도 그것은 이미 쇠퇴하고 있는 학문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장타이옌 역시 이 한계를 잘 알고 있었으며, 서학을 대체하려는 야심을 품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인식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이들은 국학 수호를 위한 방어기제를 넘어선, 인문학자로서의 직업적 태도와 사유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진보와 효율을 우선시했다면, 이들은 문화의 맥락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훗날 ‘국학의 대가’, ‘문화 보수주의자’로 불리게 된 학자들 역시 서구 학문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서양의 비교를 통해 이론을 확장하기보다는, 전통 속에서 새로운 학술적 가능성을 모색했다. 이들이 강조한 “신지식에 서구 학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인식은 단지 만청 시기 ‘고학 부흥’을 역사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중국 현대 학술의 형성이 단순히 서구 지식의 수입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