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페미니즘의 창의적 연결
저자는 ‘가톨릭 신자이자 신학자’의 위치에서, 가톨릭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전통적 가르침과 페미니즘의 충돌을 넘어서려는 신학적 성찰을 제시한다. 페미니즘을 단순히 여성의 권리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핵심과 맞닿아있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해방과 연대를 위한 사유와 실천으로 보고 있으며, 교회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모두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는 신학적 사명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는 신앙과 현실을 동시에 껴안는 신학의 본령을 되살린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관찰자 입장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종교학과 다르게, 구체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해 성숙과 변화를 지향하는 신학을 연구해온 저자는 간혹 공동체 안에서의 소통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안의 ‘사람들’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고 말한다. 교회 안에 서있는 위치가 서로 다르고 의견 차이가 있을지라도, 서로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살갑고 든든한 벗이 될 수 있다고. 마찬가지로 페미니즘과 신학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살갑고 든든한 벗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해방을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을 지향하지만, 단일한 목표를 설정하여 종착점을 찾는 캠페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은 세상과 교회 속에서 각자 서있는 위치를 딛고,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유하여 평등의 외연을 조금씩 넓혀나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은 교회와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해서 쉬이 절망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대신, 이 책을 통해 함께 넘어지고 함께 일어나는 동료들을 만나고 그들과 삶을 나누는 기쁨을 찾으시기 바란다.”
입문자도 부담 없는‘생활밀착형 여성신학’
페미니즘이나 여성신학이 낯선 독자에게도 이 책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문적인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들의 일상과 삶의 자리에서 여성신학을 풀어내려는 시도는 무척이나 정성스럽다. 각 장의 말미에 제시되어 있는 ‘더 생각해볼 질문들’은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켜주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읽기 쉬운 공론의 장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또한 부록에 수록된 국내외 단체들과 참고자료 목록까지, 이 책은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도 언제든 활용 가능한 안내서인 동시에 사유의 촉매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복음이 타협의 여지없이 선포하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다. 나의 성공과 안락과 영광의 든든한 보루로 믿고 싶은 바로 그 하느님이 모든 특권을 버리고 연약한 아기가 되어 세상에 던져졌다는 것이다. 그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며, 그의 삶을 본받아 산다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특권이 생물학적인 성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지식이든, 그 특권이 부여하는 힘을 거슬러 살며 상처받은 몸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종종 너무 쉽게 무시하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이다. 여성신학적 그리스도론은 바로 그 본질을 일깨운다.”
가톨릭 신자이자 신학자인 저자는, 선언적 언어가 아닌 경청과 사유의 태도로 가톨릭의 전통과 페미니즘의 가교가 되어주는 글쓰기를 시도하며, 갈등과 혐오의 언어가 만연한 시대에 모두의 삶을 위한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 묻고 있다. 페미니즘과 가톨릭, 이질적으로 여겨지던 두 영역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한 어느 신학자의 용기 있는 글쓰기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이 즈음에 다양한 사유와 질문들에 제법 유용한 실마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