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에서 벌어진 보통 사람들의 한국전쟁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이 15년 만에 수정증보판을 선보인다. 이 수정증보판은 저자의 현장 답사와 구술 채록, 문헌자료를 통해 두 편의 마을 이야기(완도, 해남 소재)를 새로 추가했으며, 초판 출간 이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의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내용을 꾸준히 수정 보완한 것이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을 국가 차원의 거대 담론이 아닌, 마을이라는 작은 단위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재조명하여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 역작으로 평가받으며, 제51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학술 부문)과 제24회 단재상을 수상하는 등 학계와 대중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기존 한국전쟁 연구가 주로 거시적 관점(전쟁 발발 배경, 남북한 정권 간의 대립 등)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미시사적으로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민간인들의 비극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한국전쟁의 미시사를 새롭게 정초,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
저자 박찬승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보다 민간인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그 죽음의 장소가 전선이 아니라 후방의 ‘마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전쟁 전후로 같은 마을 사람들이 왜 서로를 죽이는 ‘작은 전쟁’을 벌였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그 배경과 원인을 파헤친다.
■ ‘복합적 갈등구조’를 지닌 한국전쟁기의 폭력과 학살
이 책은 한국전쟁기 마을에서 벌어진 폭력과 학살이 단순히 계급 갈등과 좌우 이념 대립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밝혀냈다. 실제로 저자가 연구한 마을들은 그 이면에 조선시대부터 누적되어온 친족 간 계파 갈등, 양반과 평민(반상) 간의 신분 갈등, 지주와 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 경쟁관계에 있는 마을 간의 갈등과 대립,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 종교ㆍ이념적 갈등 등 ‘복합적 갈등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 친족, 마을, 신분 간 갈등이 민간 차원의 학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전쟁의 원인과 결과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삶에 전쟁이 어떻게 파고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한국전쟁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우리 학계가 그동안 한국전쟁에서 민간 차원의 내전 연구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반증한다. 저자는 그간 연구한 마을 사례를 종합해보았을 때, 이념과 계급의 갈등보다는 친족, 마을, 신분 간의 갈등이 민간 차원의 학살에서 보다 중요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 간 갈등의 틈을 남북의 국가권력이 파고들어 이용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인민군들은 마을의 하층민과 소외된 신분 계층을 이용하여 자주 인민재판을 진행시키곤 했다.
■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누적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모순이 폭발한 것
수많은 희생자를 낸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누적된 우리 사회의 여러 갈등과 모순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남북 분단은 마을 공동체 내 갈등을 차근차근 해소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갈등을 현명하게 풀어내지 못한 마을은 국가권력의 침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고, 남북한 국가권력의 선동과 극단적 대립 속에서 무차별적 학살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