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고 견디는 데만 익숙했던 한 사람이
비로소 ‘나에게’ 다정해지기로 결심하다
MBN 〈나는 자연인이다〉 메인 작가가
자연의 고요한 위로 아래 써낸 단단한 문장들
"새벽 다섯 시나 됐을까? 적막한 경인로 위로 차를 겨우 올렸다. 간혹 지나가는 택시의 헤드라이트만 보일 뿐 도로는 온통 캄캄했다. 운전대를 잡을 기운조차 없었지만, 젖이 불어 돌덩이가 된 가슴의 통증 때문에 몸은 곧추섰다. 텅 빈 도로가 무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번만큼은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은 오기를 담아 사납게 액셀을 밟았다."
우리 모두 그런 순간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삶이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할 때, 문득 되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웠을지라도 어쩌면 나 자신에게는 냉정하고 모질게 굴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만 다정했을 뿐 정작 스스로에게는 다정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 순간.
방송작가 25년 차가 된 저자는 MBN 대표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메인 작가로 수년간 많은 자연인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돌보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자연인들은 먹고사는 일에 치여 쉬는 법을 몰랐던 세월, 서로 밟고 밟히는 시끄러운 세상에서 잃어버린 평온, 남의 시선과 평가에만 신경 쓰던 시간 때문에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나를 돌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묵묵히 나를 위로하고 돌볼 기회를 선물해주는 자연에 깃들고 싶어 했다. 자연인들이 누리는 충만한 행복이 카메라에 담기는 동안, 그 뒤에 서 있던 저자도 늦게나마 스스로의 편에 서서 나의 안녕을 살피고 나에게 가장 다정해보기로 했다.
험난하기로 이름난 방송가에서 20년 넘게 치이고 떠밀리면서, 저자는 두 아이를 키워내고 오래된 병마와 싸웠으며 수많은 프로그램의 대본을 썼다. 울고 싶은 날도 전부 집어치우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꿋꿋하게 애쓰며 견뎌냈다. 나름대로 단단해졌다고, 이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 데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이제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라는 것도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작가가 놓친 것은 바로 스스로에 대한 안부였다.
이 책에는 극적인 반전도, 과장된 서사도 없다. 그저 미련하리만치 열심히 달려온, 우리 모두와 똑같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마침내 다정한 인사를 건네기까지 길고 어려웠던 여정을 담담히 털어놓은 글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돼 각자의 안부를 묻는 일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다정한 마음이 담겨 있다.
“내 삶의 조각들 속으로 들어가 가만히 나를 마주하면 보이는 것이 있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최선의 선택을 했으며, 모든 것에 진심이었는지, 홀로 애쓰며 감당해냈는지다. 그것을 알고 난 뒤의 나는 더 이상 초라해지고 싶지 않아진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돼 어떻게든 나를 빛나게 만들어주고 싶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