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와 서정의 경계를 걷는 한 시인의 고백
-김동원 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정리
김용덕 시인의 신작 시집 『바다에서 멈춰버린 우리』는 자연과 인간, 삶과 시, 기억과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깊은 울림을 전하는 시편들의 향연이다. 그는 단지 자연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을 보호하고 품는 실천의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로,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를 성찰하게 한다. 이번 시집은 “생태시”라는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다. 생태는 그의 시 세계에서 철학이자 영성이다. 특히 ‘맨발 걷기’와 같은 일상의 실천에서도 그는 지구와 인간이 서로 접속되는 생명 감각을 포착하며, 자연의 숨결을 언어로 형상화한다. 시인은 바다, 바람, 햇빛, 나무와 같은 원소들을 시적 도구로 다루되, 그 이면의 비유와 상징을 통해 인간의 무지와 욕망에 경종을 울린다.
『바다에서 멈춰버린 우리』는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짜여 있다. 첫째, 생명 중심적 시선에서 자연과 문명의 충돌을 조망하며, 환경파괴와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시로 풀어낸다. 「바다에서 멈춰버린 우리」는 그 절정이다. 이 시는 인간이 무심코 저지른 무지가 어떤 파장을 낳는지 드러내며, 지구라는 ‘푸른 별’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운다. 시인은 묻는다. “자연의 그 어떤 풀도 / 합성 세제로 초록을 세탁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모르느냐고. 그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이 시대의 생태 철학자이며, 진실을 언어로 끌어올리는 시적 실천가이다.
둘째는 가족, 특히 부모에 대한 진혼과 예찬이다. 시인은 모성과 부성의 내면에 스며든 사랑을 시로 끌어올린다. 「손」과 「술 항아리」는 그 절정으로, 독자는 자연의 숲을 걷다가도 어느 순간 어머니의 거친 손, 아버지의 고단한 막걸리 사발 속에서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시는 단지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삶의 기록이며 기억의 지도이다. 김용덕 시의 서정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실감난다. 언어는 땅의 촉감이고, 체온이다. 시인은 “솔향이 바람에 실려 오면”이라는 구절 하나만으로도 과거의 시간 속 어머니의 손을 독자에게 되살려준다.
셋째, 시집 전반에 흐르는 주제는 현실 체험에서 나온 언어의 진정성이다. 「우시장 가는 길」, 「은아 수퍼」, 「새끼」와 같은 작품들은 ‘한 인간’으로서,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체험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는 잊힌 골목의 풍경, 새벽 공사장의 거미줄 속에서 우리 사회의 밥줄과 생존의 몸부림을 읽어낸다. 그의 시에는 작위가 없다. 삶의 땀냄새와 솔향이 교차하는 언어들 속에서, 시인은 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를 하나로 통합한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인상적인 점은 김용덕 시인이 ‘말하는 존재’가 아닌 ‘기록하는 존재’로서 시를 대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감각의 묘사를 넘어서 철학과 감정, 실천의 내력을 내포하고 있다. 『바다에서 멈춰버린 우리』는 고요한 언어의 숲을 걸으며 우리가 잊고 있던 것들-자연, 고향, 어머니, 아버지, 기억, 존재의 뿌리-을 되짚게 하는 시집이다. 그 안에서 독자는 잊고 있던 감각들을 되살리며, 자신의 생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묻는다. 정말 우리는 알고 있는가? 우리가 딛고 선 이 땅이,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 생명의 선물인지. 그리고 그 모든 존재 앞에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를. 김용덕의 시는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대답이자, 묵묵히 실천해온 시인의 삶 그 자체다. 이 책은 단지 시집이 아니라, 한 생애가 고요히 스며든 기록이자, 우리 모두를 위한 생명의 예언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