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읽고 나면 두 번 다시 여권을 가볍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_《지오그래피 렐름》
★ “여권의 언어적 여정과 그 밖의 많은 것을 탐사하며 인상적으로 조사한다.” _《월스트리트저널》
★ “여권의 강력한 힘과 여권의 불평등성이 주는 고통을 깔끔하게 설명한다.” _《AFAR 매거진》
파라오 치하 고대 이집트와 중국 한(漢) 제국의 통행증부터
오늘날의 여권 통제와 난민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필요불가결한 여행 서류, ‘여권’의 놀라운 진화사
「악마의 시」의 작가 살만 루슈디는 이것을 “내가 가진 가장 귀중한 책자”라고 불렀다. 스탕달의 장편소설 『파르마 수도원』에는 ‘이 단어’가 70회 넘게 사용되었고, 3천 년도 더 전에 미라가 된 람세스 2세는 1976년, 프랑스 영토에 들어가기 위해 ‘이것’을 발급받았다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영화 〈본 슈프리머시〉의 주인공 ‘제이슨 본’은 의도적으로 ‘이것’을 위조해 CIA의 통신을 엿듣고,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로비 보이’인 제로 무스타파는 무국적 이민자로, 제대로 된 ‘이것’이 없어 갖은 고초를 겪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에서 또 다른 예시를 찾아보자면, 1988년에 ‘이것’을 도난당한 뒤로 18년 넘게 샤를 드골 공항의 1번 터미널에서 살아온 이란 난민 ‘메흐란 카리미 나세리’도 있다. 이 실화는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터미널〉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앞서 설명한 ‘이것’의 정체는 역시나 여권이다. 여권은 이렇듯 세계적으로 가장 친숙하고,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장 사회적인 서류인 여권은 오늘날 국경을 넘기 위해 모든 사람이 의존하는 가장 중요한 서류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부터 광대한 실크로드와 두 차례 세계대전이 휩쓸던 유럽, 국제공항의 출입국 심사대와 인파로 북적이는 난민 수용소까지 수없이 많은 서사의 중심에 여권이 빠지지 않고 존재한다. 우리가 지리적ㆍ문화적 경계를 넘는 방식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가? 여권은 어떠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날 여행의 필수품이 되었는가? 여권은 여권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상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여권은 조국과 타국, 여행과 이주, 소속과 실향, 시민권과 배제, 국가 간의 분쟁과 국제 협력 등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굴절시켰는가? 여권은 그 긴 역사 내내 유지된 개인과 정치의 불편한 교차점에 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여권의 문화사를 탐구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동성의 약속, 감정의 구조, 국가 권력의 도구에 관한 중대한 뭔가를 헤아리게 된다. 「여행 면허: 이동하는 인류의 자유와 통제의 역사」의 저자 패트릭 빅스비는 고대 유물부터 문학 작품과 저술, 편지, 영화와 무용, 회화와 현대 설치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인물의 일화와 이들의 흥미로운 작품, 이들과 관련된 기록을 톺아보며 여권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사회ㆍ정치ㆍ문화적 메커니즘을 통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찰한다.
자유와 통과 vs 통제와 제한
경계에 놓인 여행 서류
개인과 국가권력의 팽팽한 힘겨루기
「여행 면허」는 여권이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했으며, 세계의 역사와 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설명한다. 국제적인 신원 확인증인 여권의 시작은 ‘안전 통행 편지’의 형태로, 안전한 이동을 보장하는 ‘귀중한 여행 서류’ 역할을 했다. 이후 역사에 따라 여행 허가서로, 국제연맹의 표준 여권으로, 심지어 기계판독이 가능한 오늘날의 전자여권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개인의 신원에 점점 더 밀접해지는 방향으로 강화되어 왔다.
금융 범죄자인 권도형이 해외 도피 중에 2023년 체포되고, 2025년에 우리나라로 송환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위조 여권 사용이었다. 이렇게 여권은 개인을 명확하게 확인함으로써 국토방위를 보장한다는 미명 하에 국경을 넘는 개인의 이동을 통제하는 정부 감시와 국가권력의 필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외국인 유학생과 교수진 단속 강화에 2025년 휴스턴 대학의 한국인 조교수가 비자 취소로 학기 중 수업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야말로 여권 제도의 역설을 드러내는 현실이다.
「여행 면허」는 개인이 가진 이동의 자유를 실현하는 도구이자, 국가권력의 감시와 통제 도구인 여권이 우리의 인간성 자체를 규정할 만큼 강력하다는 진실을 문화사적 맥락에서 드러낸다.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는 몽골제국의 칸에게 황금 패자를 하사받고 동방 원정에서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는 캐나다 여권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외국인 취업 비자로 성공한 미국 이민자이자 억만장자 사업가이며, 이제는 화성 이민자가 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나 미국의 민권 운동가이자 가수인 폴 로브슨은 정부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저항하다 여권을 빼앗기고 국내에 발이 묶이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가와 지식인의 여권, 고대의 칙사와 근대 이민자의 여권에 얽힌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이 작은 책자가 정체성과 이동성, 시민권과 국가권력, 지정학적 국제관계에 관한 거대서사에 우리가 어떻게 귀속되는지 전방위적으로 밝혀낸다.
역설적이고도 강력한 여권 제도가
지배하는 아이러니한 세계질서
여권의 변천사는 단순히 지리적 국경을 넘는 이동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속과 배제, 같음과 다름, 자신과 타자의 경계라는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들의 서사와 다름없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여권을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허점을 파고들기도, 정면 돌파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성공하고, 또 누군가는 비참하게 실패하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순간의 선택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특히 저자는 분야를 막론하고 방대한 자료와 정보력으로 누구의 어느 작품 또는 어떤 일화로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유쾌하고 흥미로운 서사를 제공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고대 이집트의 통치자 람세스 2세가 1976년 9월 26일, 현대 이집트 여권을 소지하고 프랑스에 입국했다는 소문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볼셰비키 지도자 레닌은 임시정부에 체포당하지 않으려 1917년에 트레이드마크인 대머리와 턱수염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쓰고 면도까지 하면서 가짜 여권 사진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레닌의 턱수염 없는 유일한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데이비드 린지라는 남성 필명으로 글을 쓰던 작가 메리 다이애나 도즈는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도움으로 위조 여권을 만들어 남성 ‘숄토 더글러스’로 새롭게 태어났다.
작가이자 사상가로 「역사철학 테제」 등의 저술로 여러 분야에 영향을 준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무국적자로 출국비자 없이 스페인 국경을 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와 동등한 입장의 유대계 독일인 해나 아렌트는 비밀조직의 도움으로 뉴욕행 여객선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권리를 가질 권리”를 부정당한 무국적자의 지위를 고찰하여 훗날 「전체주의의 기원」을 펴냈다. 여권에 얽힌 아이러니한 일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파블로 네루다처럼 생존을 위해 생김새가 비슷한 친구에게서 빌린 여권으로 파리까지 도망치기도 하는가 하면, 스탈린과의 경쟁에서 밀려 추방된 레온 트로츠키는 위조 여권을 이용해 잠입한 비밀요원 때문에 멕시코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제한 없이, 여권 없이
국경을 넘는 시대는 올 것인가
세상에 여권만큼 명료하고도 역설적인 책자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 국가라는 경계를 넘으려는 개인은 모두 이 작은 여행허가서, 규격화된 여권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느 여권을 가진 사람은 어느 나라든 갈 수 있는 특권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누리지만, 또 다른 여권을 가진 사람은 가고자 하는 곳에 가지 못하게 막을 뿐더러 원치 않는 곳, 극단적으로는 수용소로 보내지기도 한다. 저자는 「여행 면허」 전반에 걸쳐 이렇게 묻는다. 여권의 이러한 불균형과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왜 만들어졌는가?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권리가 어떻게 침해되고, 배제되어 왔는가?
어떤 여행자에게는 번거롭고 불편하며, 불안해지다 못해 굴욕적인 악몽을 경험하게도 하는 여권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유용하다고 판단해왔으며 앞으로도 절대 포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여권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능이 강화되었으며, 앞으로 더욱 디스토피아적으로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진행형인 전 지구적 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근대 세계를 규정 지은 국가와 여권 제도에 묶여 분리와 배제와 통제와 금지로 인한 국제 이주와 난민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직은 유토피아적이지만, 저자는 여권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움직임에도 주목한다. 개방성과 수용성을 기반으로 국경의 장벽을 낮추다 못해 없애려는 탈국경과 세계 정부를 위한 활동은 다각도에서 다양한 형태로 펼치고 있다. 영토국가의 개념을 거부하는 NSK 국가의 여권 발급 프로젝트, 세계업무기구(WSA)에서 발급하는 세계 여권은 물론, 몰타의 시인 앙투안 카사르의 작품 『여권』과 공연 프로젝트, 헬레나 발트만의 무용 작품 〈좋은 여권 나쁜 여권〉 등에 이르기까지 반여권과 탈여권을 주장하는 이와 같은 움직임의 의미와 심화되는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고찰한다. 여권 없이, 아무 제한 없이 여행하는 날은 과연 오게 될 것인가? 아니면 형태만 바뀐 여권이 국가주권을 강화하는 더욱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