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의 말씀에 깃든 여백
이해를 넘어서는 성경의 깊이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경전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며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삶의 길을 찾는다. 성경 말씀은 그 속에서 길을 모색하는 이들을 인도하는 은총이자 삶을 정립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명료하기보다 종종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리 읽어도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의 언어로 쓰였지만, 그 언어를 넘어서는 하느님의 영감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산한 여느 텍스트와 달리 성경은 신적 신비의 높고 깊고 거룩한 차원을 담고 있어서, 인간 지성만으로는 그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해석을 내놓더라도 성경 말씀에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은 의미의 여백이 남는다. 수수께끼처럼 아득한 그 의미의 여백이야말로 말씀의 깊은 차원을 드러내는 원천이다.
단어 하나 속에 깃든 신적 진리
말씀의 수수께끼를 푸는 해석학적 시도
『애니그마, 말씀의 수수께끼』는 해석의 이면에 놓인 이 수수께끼에 참여하여 말씀의 더 깊은 진리를 사유하려는 시도다. 말씀의 수수께끼, 곧 ‘애니그마’는 말씀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지만, 또한 동시에 말씀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서게 하는 단서이자 길잡이이기도 하다. 저자가 애니그마를 성경 해석의 중심에 놓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저자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말한 ‘아는 무지(docta ignorantia)’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결코 그 본질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언제나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며, 이미 아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 사이를 오가면서 조금씩 더 진리에 다가선다. 이 끝없는 추정과 해석의 여정이 곧 ‘해석학적 순환’인데, 저자는 바로 이런 해석학의 방법을 통해 말씀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성경 본문의 그리스어 원어다. 복음서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핵심 단어를 선정하고 그 단어의 뿌리와 시대적 맥락, 성경 내적인 연관성을 세심하게 살핌으로써 해당 본문에 담긴 의미구조를 생생하고도 풍요롭게 펼쳐 보인다.
예를 들어 동방 박사를 인도했던 그 “별”(아스테르)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이면서 동시에 진리가 드러나는 신적 펼침의 상징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그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드린”(프로스퀴네오) 행위는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과 복종이자 동시에 주님께서 먼저 인간을 섬기신 은총의 사건임을 보여준다. 또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걸림돌”(스칸달론)이라 질책하신 까닭은 죄와 유혹이 장애물에서 시작되지만, 또한 그런 넘어짐 속에서 성장하고 단련되어가는 인간 존재의 역설적 본질을 보여주기 위함임을 따뜻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이처럼 성경 본문에 나오는 사소한 단어 하나에도 신적 의미와 깊은 은총이 깃들어 있음을 저자는 특유의 해석학을 통해 여실히 입증해 내고 있다.
질문의 여정으로서의 성경 읽기
은총의 해석학과 끝없는 추정
그렇다고 이 책이 완결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게 신학이란 질문을 나누는 여정이다. 저자의 관심은 한갓 이론이 아니라 이 땅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 자체에 있다.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일 역시 현실의 삶과 상호작용한다. 살아가면서 말씀 해석의 실마리를 얻고, 성경을 읽으면서 삶의 실마리를 얻기 때문이다. 말씀과 삶의 이런 순환과 해석의 과정을 저자는 ‘은총의 해석학’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전진하며 완결되지 않는 여정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답을 제시하는 대신 열린 질문을 던진다. 본문이 제시하는 지평이 각자의 삶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지를 독자 스스로 사유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의 깊은 신학적 통찰과 따뜻하고 섬세한 묵상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 본문이 던지는 초대와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그 자리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직 남은 이야기는 그래서 독자의 몫이다. 묻고 사유하고 또다시 물으면서 삶의 자리를 돌아보는 성찰적인 태도, 이것이 이 책이 나누고자 하는 가장 값진 경험이다.
복음서는 여전히 우리를 부른다
말씀과 삶을 잇는 묵상의 동반자
『애니그마, 말씀의 수수께끼』는 신학적 깊이와 묵상적 친절함을 조화시킨, 보기 드문 복음서 해석이다. 먼저 출간하는 이 1권은 마태오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 선별된 50개의 에피소드를 다룬다. 본문의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아름다운 묵상을 쉽고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언어로 전달한다.
* 성경을 더 깊이 읽고 싶은 모든 분에게
* 언어적·철학적·신학적 탐구를 하고 싶은 일반 독자에게
* 실천적 묵상으로 신앙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 사목 현장에서 신자들과 나눌 묵상을 준비하는 사목자와 신학 연구자에게
이 책은 유익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