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은 사람이 영위하는 공간 생활의 핵심적인 기초여서 한국 지명에는 한국인이 공간을 이해한 각종의 지식이 담겨 있다. 따라서 한국 지명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길은 한국인이 가졌던 지식을 이해하는 길이 된다.
마한소국(馬韓小國)인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이 조선 시대 부평도호부 주화곶면(注火串面) 표기로 계승된 사실을 추정했을 때, 지명의 보수성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신라의 6부 명칭인 탁평(啄評) 표기에 사용된 탁(啄) 글자가 한국과 중국 모두에서 훼(喙) 글자와 넘나들면서 서사 된다는 증거를 찾아 탁평(啄評)의 탁(啄)이 ‘부리’가 아니라 ‘도랑’을 뜻하는 ‘*도’ 정도를 표기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도출했을 때, 학문 연구가 철저히 증거에 기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시대 22역도 체제 역명의 표기 변화를 다룬 논문에서 지명의 차자 표기가 훈독법(訓讀法)에서 음독법(音讀法)으로 변화한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요인이 고려 초 도입된 과거 제도란 추정을 하였을 때, 역사 변화의 필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 변화의 필연성에 말미암아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음에도 문헌 자료에 우리의 지명은 우리말로 기록되지 못하고 차자로 기록되는 불운한 숙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의 경우에는 차자의 음독법이 주류가 되어 우리말 지명의 참모습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시대 문헌 자료를 상세하게 검토하여 당시 동리촌명(洞里村名) 자료를 수집하고 나서, 조선 시대 초기의 동리촌명 차자 표기를 지배한 원리와 우리말 지명의 구체적인 모습을 관찰했을 때도 나는 역사 변화의 필연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말 지명에 관한 연구를 통해 나는 우리말 어원의 연구가 지명 연구의 궁극적 목적 중의 하나인 사실을 통찰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개’의 어원을 ‘곡(꼭대기)+애(속)’로 추정하였다. 산지가 많은 한국과 일본의 공통성에 기반하여 한국과 일본의 ‘고개’ 관련 어휘를 비교하여, 나는 이러한 추정을 도출하였다.
덕분에 마한소국(馬韓小國)인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을 해독할 수 있었으며, 종 다양성을 보여 주는 옛 부평 지명을 자세하게 분석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부천을 포함한 부평 지명에는 산천, 평야, 바다 등과 관련된 다양한 자연지명이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논밭 명칭, 군 관련 명칭 등 관련된 인공 지명 및 행정구역 명칭이 보존되어 있다.
-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