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뒷면을 들여다보는 일,
그 속에 깃든 삶의 조용한 진실에 대해
그러나 차마 할 수 없었던 말들이 벽 속에 숨어 사는 개미들처럼 그 편지 뒷장에 빼곡하게 숨어 있었다는 것을. (「에필로그: 다시, 뒷면에게」에서)
깊고 단단한 문장을 건네는 작가, 임솔아의 첫번째 산문집이 문지에크리 열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첫 산문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다림에 부응하듯, 『다시, 뒷면에게』에는 저자가 아주 오랫동안 응시하고 차분히 매만진 글들로 가득하다. 제목의 표현처럼, 책에는 “뒷모습을 보려면 제가 보던 시선의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만” 함을 아는 자의 태도가, 지나간 기억을 가만히 쓸어주는 손길이 녹아 있다. 뒷모습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한 시절을 공유한 가족들과의 일상,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막막함, 세상을 떠난 사람의 결코 잊히지 않는 눈동자, 아픈 강아지의 마지막 발걸음,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들. 아름답지도 않은 것들. 끝까지 혼자인 것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 “내가 기다려온 무언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어느 날 소설을 쓰다가 그 인물에게 뒷모습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밝힌 적이 있다. 이 말을 열쇠 말 삼아본다면, 이번 산문에서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일화들은 아직 씌어지지 않은 면을 상상하고 그려내는 작가로서의 태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뒷면에게』는 한 인물이나 사물의 뒷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응시하며, 문학이 다가갈 수 있는 깊이와 섬세함에 대해 고민하는 일종의 문학론, 작가론으로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겹쳐지고 포개지며
돌보고 위하는 날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여성, 작가, 프리랜서로서 마주하는 정체 모를 곤경과 곤란을 해석하는 데로 나아간다. 글을 쓰는 집필 노동자이자 프리랜서로서 쉬이 이행되기 어려운 휴식에 대해 “쉼이야말로 그 명명에 대한 이데올로기들의 전장”이라고 말하거나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거치면서 논의된 의제들에 대해서는 “대안까지도 자신의 먹이로 흡수해버리는 소비주의와 성과주의의 먹성”이라고 지적하며, 논의와 답변이 과포화되는 현상을 예리하게 통찰한다. 1부와 2부를 거쳐 3부 ‘위하는 일’에 이르면, 저자는 앞선 뾰족한 해찰을 넘어 자신이 경험했던 돌보고 위하는 관계들을 풀어놓는다. 한때 좋아했던 연예인을 회상하는 언니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날을 옹호하는 다부짐”을 읽어내고,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운동’에서 만난 t를 통해,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해석하는 삶의 저력과 그 힘을 북돋아주는 관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저자의 시선은 단일한 면을 응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겹쳐지고 포개진 삶들 위에 놓여 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손길과 서로를 돌보는 연대의 순간들이, 작가로 살아가는 오늘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나와 가까운 곳에 선배가 있다는 것은 내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선배처럼 살고 있는 여성들이 있음을 명심하도록 만든다. 안 보이는 사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렇지만 여성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길을 만들고 있는 사람. (「선배의 생일을 축하하러 갔다」에서)
보이지 않는 뒷면을 응시하는 깊고 섬세한 시선, 그리고 서로에게 더 좋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 차분히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을 응원하는 글들을 읽다 보면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통찰은 물론 용기와 위로를 얻게 된다. 문예지와 앤솔러지는 물론이고, 전시 도록과 메일링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면에 발표한 산문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은,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는 편지들이 문학이 되었다”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발신하지 못했던 사사로운 편지들을 떠올리게 하며, 각자의 내밀한 시간을 마주할 용기를 건넨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읽는 일은 지나간 시간들을 겹눈으로 바라보며, 기억의 결을 섬세히 읽어내는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