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처음 나무와 만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수안보에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1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등굣길 중간에 마치 터널처럼 고목이 우거진 곳에 서낭당이 있었고, 그 서낭당 누각에는 할머니 모습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제단에는 아주 가끔 떡과 음식이 그리고 약간의 동전이 놓여 있기도 했다. 아직 따스한 떡을 먹고 동전을 가져다 과자를 사 먹은 어느 날 하굣길에 천둥 번개와 함께 억수로 비가 쏟아지던 순간을 저자는 생생히 기억한다. 집에 가기 위해 서낭당을 지나야 하는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차마 그곳을 지나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비를 맞았다. 그 후로 커다란 고목을 보면 나뭇가지를 배경으로 서낭당에 걸려 있던 할머니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나무가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인적 드문 시골의 아이에게 마을의 나무는 언제나 친구였고, 놀이터였다. 친구들과 나무 주위에서 모여 놀다가 밥 먹으라는 소리에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결국에 혼자 남아 할머니가 어서 불러주길 기다리는 그 순간에도 나무는 언제나 내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었다.
커서도 오래되고 멋진 나무를 보면 주위를 서성거리며 쉬이 떠나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광고 사진가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나 오랜 꿈이던 작가가 되고자 결심했을 때, 저자 스스로 사진 인생의 주제가 무엇이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이미 촬영한 밀착 인화된 사진들을 뒤적이던 어느 날, 내가 그동안 촬영해온 사진 중 나무 사진이 가장 많았으며, 나무를 내 평생의 주제로 정한다면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고 나의 작업을 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사진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나, 저자의 첫 나무 사진 전시인 ‘푸른 나무’ 전시의 계기는 2012년 우연히 주어졌다. 나무가 많고 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양재천 둑방길 옆에 원하던 작업실을 구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양재천 둑방길의 나무마다 번호가 적힌 붉은 노끈이 매여 있는 것을 보았다. 주변 카페에 물었으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고, 심지어 많은 사람이 나무에 갑자기 번호표가 생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마침내 한 카페 주인으로부터 이 나무들이 새로 지어지는 근처 보금자리 아파트 이면도로 확장을 위해 모두 베어진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출퇴근 시간 강남대로의 체증이 저리 극심한데 여기에 이어지는 도로 하나 넓힌다고 차량 흐름이 빨라질까? 한 서초구 의원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를 들었다. 전혀 빨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그날부터 저자는 양재동 일부 시민과 함께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석 달 동안 약 3000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와 SH공사, 서초구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동시에 그동안 촬영해온 나무 사진과 양재천의 나무 사진들을 더하여 전시회를 추진했다. 시민들에게 나무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결국 일이 커지자 서초구는 이미 끝난 시민 공청회를 다시 개최했고, 참석한 시민 만장일치로 기존 도로 확장안이 아닌, 건너편 시민의숲 둑방길 지하로 터널을 뚫는 새로운 안이 채택되었다. 결국 나무를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전시는 뒷북이 되었으나 양재천의 나무들이 아니었다면 ‘푸른 나무’ 전시는 더 미루어졌을 것이 확실하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전시가 결국 나무 사진 전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무가 나무 사진가를 만들었다.
이후로 저자는 ‘숲’ ‘꿈꾸는 나무’ ‘히말라야’ ‘올리브나무’ ‘바오밥’ ‘신목 시리즈’ 등 많은 나무 사진을 시리즈로 발표했다. 그 시리즈들을 통해, 밤에 조명을 받아 인간과 같이 지구의 주인공이 된 아름다운 나무들, 최종 작품으로 완성된 경이로운 나무 사진들을 전시장에서 선보였으나 시각예술인 사진의 특성으로 인해 그 과정에서 ‘보여줄 수 없는 것’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사진에 담기지 못했고 기록으로도 남지 않았다.
신안의 작은 섬에서 팽나무를 촬영할 때 밭에서 일하던 노부부가 저자에게 들려준 작지만 따스한 삶의 이야기들, 바닷가 마을에서 죽음이 멀지 않은 노인이 들려준, 나무와 함께 한 청춘의 찬란한 기억들이 전시장에는 담기지 않았다.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에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소소하지만 따스한 기억들, 누군가와 함께한 뜨거웠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을 겪고 마
침내 남겨진 결정체와 같은 빛나는 기억들이 아닐까.
2022년 가을, 남해에서 ‘남해신목’ 시리즈를 촬영하며 나는 나무를 ‘시간의 기억’ ‘인간의 염원을 기록한 기억의 도서관’이란 내용의 작가 노트를 썼다.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살아온 나무가 인간에게 그리했듯이, 나무를 촬영하며 알고 듣게 된,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들이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소망으로 이 기록을 만들었다.